![]() |
169
2010-12-06
신병주|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공민왕, 정도전, 광해군, 흥선대원군 등 여러 인물이 있지만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역시 이념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꼽을 수가 있다. 비범한 카리스마를 무기로 등장하여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도덕정치가 구현되는 이상사회의 건설을 부르짖었던 인물 조광조. 16세기 초반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했다가 5년 만에 좌절된 정치 행적. 그의 좌절은 보수와 현실정치의 벽이 당시에도 얼마나 두터웠던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임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만일 누가 나에게 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한다면, 1년이면 그런대로 실적을 낼 것이고, 3년이면 정치적 이상을 성취할 것이다.” 하셨다. 성인이 헛된 말씀을 하셨을 리 없으니, 아마도 공자께서는 정치를 하기 전에 반드시 정치의 규모와 시행하는 방법을 미리 정해놓으셨을 것이다. 그 방법을 하나하나 지적하여 말해보라. …… 나는 덕이 부족한데도 조상들의 큰 기업을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잘 다스리기를 원한 지 10년이 되었건만, 기강이 아직 서지 않고 법도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적을 이루려고 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운 그대들은 모두 요순시대와 같은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려는 뜻을 품고 있을 테니, 뜻이 단지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오늘과 같은 시대에 옛날의 이상적인 정치를 이룩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급선무로 하겠는가? 모두 다 말해보라. [王若曰。孔子曰。如有用我者。期月而已。可也。三年有成。聖人豈徒言哉。其規模設施之方。必有先定於未行之前者。其可指而歷言之歟。…… 予以寡德。承祖宗丕基。臨政願治。于今十年。而紀綱有所未立。法度有所未定。如此而求有成之效。豈不難哉。諸生。學孔子者。皆有堯舜君民之志。不止於有成而已。當今之時。如欲致隆古之治。何者爲先務。其言之以悉。]」
중종이 낸 문제에 대해 조광조는 거침없이 답안을 써 내려 갔다. 아래는 조광조가 쓴 대책(對策), 즉 시험 답안지의 일부이다.
「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이 같으므로, 하늘의 이치가 사람에게 유행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임금과 백성은 근본이 같으므로, 임금의 도가 일찍이 백성에게 쓰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들은 거대한 천지와 수많은 백성을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 이치를 살펴서, 그 도를 처리한 것입니다. 이치를 가지고 살펴보았으므로 천지의 뜻을 지니고 신명한 덕에 통달하였습니다. 도를 가지고 처리하였으므로 정밀하고 세세한 일을 응집하고, 사람이 마땅히 할 떳떳한 도리를 다스렸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며,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가치판단이 내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臣對。天與人。本乎一。而天未嘗無其理於人。君與民。本乎一。而君未嘗無其道於民。故古之聖人。以天地之大。兆民之衆爲一已。而觀其理而處其道。觀之以理。故負天地之情。達神明之德。處之以道。故凝精粗之體。領彝倫之節。是以。是是非非。善善惡惡。無所得逃於吾之心。]」
조광조는 이어서 중종이 낸 책문의 핵심인 공자의 도를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이고, 공자의 마음이 바로 천지의 마음입니다. 천지의 도와 만물의 많음이 이 도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천지의 마음과 음양의 감화도 또한 이 마음에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음양이 조화되어 만물이 이루어진 뒤로, 일물이라도 그 사이에서 성취되지 않음이 없고, 반듯하게 구별되었습니다. 하물며 공자께서는 본래 있는 도로써 이끌었기 때문에 쉽게 효과를 얻었고,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써 감화시켰기 때문에 쉽게 효과를 얻은 것입니다. [夫子之道。天地之道也。夫子之心。天地之心也。天地之道。萬物之多。莫不從此道而遂。天地之心。陰陽之感。亦莫不由此心而和。陰陽和。萬物遂而後。無一物不成就於其間。而井井焉有別。況夫子導之以本有之道。而易得其效。感之以本有之心。而易得其驗歟。]」
조광조는 공자의 도가 천지의 도이며, 공자의 마음이 천지의 마음이기 때문에 공자의 말대로만 한다면 그 다스림의 효과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을 하였다. 조광조는 또한 법도와 기강을 세울 것을 강조하는 한편, 원칙이 세워지면 대신들에게 정치 실무를 위임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법도와 기강의 큰 줄기를 세웠다면, 이제는 대신에게 정권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군주가 홀로 정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대신에게 맡겨야 정치의 법도가 확립되는 것입니다. 군주는 하늘과 같으며, 신하는 사시(四時)와 같습니다. 하늘이 혼자 돌기만 하고 사시의 운행이 없으면, 만물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군주가 혼자 책임을 지고 대신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온갖 교화가 흥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흥기하지 않고 완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늘이 혼자 운행하고, 군주가 혼자 책임을 진 즉 하늘이 되고 군주가 되는 도를 크게 잃을 것입니다. …… 그래서 옛날에 성스러운 군주와 현명한 재상은 반드시 성실한 뜻으로 서로 믿고 모두 그 도리를 다하여 함께 정대(正大)하고 광명한 업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우선 대신을 공경하고 정치를 맡겨 기강을 정립하고, 법도를 정립하신 다음 훗날 대본을 수립하고 큰 법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若法度之所以粗定。紀綱之所以粗立者。未嘗不在乎敬大臣而任其政也。君未嘗獨治。而必任大臣而後。治道立焉。君者如天。而臣者四時也。天而自行。而無四時之運。則萬物不遂。君而自任。…… 故古之聖君賢相。必誠意交孚。兩盡其道。而可以共成正大光明之業矣。伏願殿下。姑以敬大臣而任其政。粗立其紀綱。粗定其法度。以其後日大本之立。大法之行也。]」
마지막으로 조광조는 도를 밝히는 것과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는 것을 마음의 요체로 삼아야 함을 거듭 강조하며 답안을 맺고 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도를 밝히는 것’ 과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 을 마음 다스리는 요체로 삼고, 그 도를 조정에 세우셔야 합니다. 그런즉 기강이 어렵지 않게 설 것이며, 법도도 어렵지 않게 정해질 것입니다. 공자가 “석 달이면 가하고, 3년이면 성취할 수 있다.” 한 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임금님의 위엄을 무릅쓰고 감격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며, 삼가 죽기를 각오하고 대답합니다. [伏願殿下。誠以明道謹獨。爲治心之要。而立其道於朝廷之上。則紀綱不難立而立。法度不難定而定矣。然則夫子三月之可。三年之成。亦無不在乎是矣。臣干冒天威。不勝激切之至。謹昧死以對。]」
|
| ㆍ참고사항 |
| 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주요저서 -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일지사, 2000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램덤하우스, 2003 -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 함께, 2007 -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등 |
![]() |
'http:··blog.daum.net·k2g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幸蜀回至剑门.作者: 李隆基 (0) | 2011.01.09 |
|---|---|
| 설중매.글쓴이 / 이종묵 (0) | 2011.01.09 |
| 自悶(자민) - 韓龍雲(한용운) (0) | 2011.01.09 |
| 閑唫(한금) - 韓龍雲(한용운) (0) | 2011.01.09 |
| 陳伯海, {中國文學의 거시적 이해}, 中國社會科學出版社. (0) | 2011.0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