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뒷골목에 있는 베이징 덕 전문점 리췬카오야디엔의 상차림. 화로에서 대추나무 장작으로 굽는 정통 베이징 덕을 내놓는다. |
지난 3월 초 발간된 2010년 프랑스판 미슐랭 가이드북의 핵심은 프랑스 남부 퐁종쿠즈(Fontjoncouse)지방에 있는 ‘로베르주 뒤 비외 퓌(L’Auberge du Vieux Puits)’라는 레스토랑이었다. 관광객들과는 무관한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고, 밥벌이가 되는 주변 소비층을 전부 합쳐도 133명에 불과한 이곳이 3스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발표 즉시 레스토랑으로 가는 좁은 산길이 세계로부터 몰려온 미식가들로 메워진 것은 물론이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겠지만 ‘나만 알고 있는 깊은 골목에 숨겨진 허름하지만 맛있는 식당’에 대한 특별한 매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세계를 여행할 때마다 항상 고민하는 것 중 하나로 ‘나만의 식당’에 대한 집착을 빼놓을 수가 없다.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어디에서 베이징오리를 먹어야 하나?”하는 고민도 같은 맥락이다.
베이징오리 요리는 베이징이나 중국에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찾게 되는 음식이다. 중국 음식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한국=자장면, 중국=베이징오리’로 굳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에 바짝 익혀 바삭바삭한 껍질과 담백한 육질, 쓴맛과 단맛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소스와 잘고 길게 썬 파. 이 모든 것을 싸서 한입에 먹어본 ‘행복한 기억’을, 중국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에, 특히 베이징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베이징오리 요리에 대한 ‘고집’이다.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보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고 베이징에서 오리고기를 먹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라는데…, 과연 ‘특별하고 색다른’ 베이징오리 요리를 제공하는 곳은 없는 것일까? 프랑스 파리지앵은 점심식사 장소를 결정하기까지 1시간 이상 고민한다고 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점심시간 동안은 저녁을 어디에서 먹을지, 저녁식사 시간에는 다음날 점심식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가 식탁에서의 주된 대화라고 한다. 베이징오리 요리를 둘러싼 ‘특별한 고집’은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갖게 되는 고민이라 생각된다.
아마 베이징오리 요리는 베이징에서는 어디에서도 먹을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일 것이다. 그렇지만 청결과 그럴 듯한 서비스를 갖춘, 이른바 국제적 기준에 따른 음식점에서 만들어지는 베이징오리 요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어느 정도 돈을 주더라도 깨끗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만든 베이징오리를 즐길 수 있는 요리점은 손꼽을 정도이다. 특히 역사와 전통을 갖춘 국제기준의 베이징오리 요리점은 많아야 10개 정도에 불과하다.
크리스토퍼 힐이 다녀간 곳
6자회담으로 한국·중국·일본·북한을 오간 크리스토퍼 힐은 엄청난 마일리지만이 아니라 각국의 음식을 두루 접할 기회를 가진 인물이다. 외교관이면서 미식가로 변신한 것이다. CNN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지만 크리스토퍼 힐은 한국에서의 자신의 단골식당으로 종로 입구에 있는 허름한 순두부집을 가장 먼저 손꼽았다. 미국인이 골목길의 순두부집을 단골로 고른다는 점은 정치적 제스처라 하더라도 미식가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리췬은 저녁보다 낮에 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베이징의 진수인 후통(胡同)을 천천히 걸으면서 눈과 발로 느끼기 위해서는 밤보다는 낮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돈도 안 들면서 중국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후통산보를 꼽는다. 후통이란 간단히 말해 베이징의 뒷골목을 말한다. 중국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후통은 큰길 주변에 들어선 개방 이후의 세련된(?) 중국이 아닌, 원래 중국과 중국인을 속살을 느낄 수 있는 학습장이기도 하다. 베이징 전통가옥인 사합원(四合院)을 볼 수 있고 작은 규모의 식당과 생필품가게, 과일가게들이 늘어선 후통은 근대화 이후 사라진 한국 골목길의 어제를 느낄 수 있는 회상의 거리이기도 하다. 물론 100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들어선 ‘전면개방식 공동화장실’은 후통거리의 얼굴이기도 하다. 2008년 올림픽경기를 계기로 노후된 후통들이 철거됐거나 철거 중인 상태이지만 그래도 베이징의 중심부로 가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후통이다. 리췬은 바로 그 같은 철거를 기다리는 후통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식당이다.
중국 저명인사들의 단골집
리췬의 입구는 붉은색 등불로 장식돼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리췬을 오간 수많은 저명인사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크리스토퍼 힐이 점퍼 차림으로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앨 고어 전 미 부통령, 제임스 켈리 6자회담 미국 측 대표, 베이징 주재 각국 대사들과 배우 주윤발의 사진도 늘어서 있다. 유명인이 왔다고 맛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교관이 자주 찾는 곳은 뭔가 ‘특별한 맛과 멋’을 가진 곳이라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편견없이 많이 경험한다는 것은 미식가로서의 기본 조건이다. 외교관은 그런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유명 베이징오리 요리점과 달리 미국인보다 중국인의 사진이 더 많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 역사가, 음악가와 같은 문화계 유명 중국인들인 듯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전부 4개의 크고 작은 방을 중심으로 10개의 테이블이 늘어서 있다. 앨 고어나 크리스토퍼 힐이 이용했을 듯한 둥근 테이블 하나를 갖춘 작은 객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가본 베이징오리 전문집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다. 피자집에서 중요한 것은 피자를 굽는 화로가 있는지 여부이다. 가스나 전자레인지에서 만든 피자는 맛이 없다. 베이징오리 요리점도 마찬가지이다. 리췬은 대추나무를 연료로 하는 화로가 식당 입구에 들어서 있다. 대추나무 타는 향이 식당 전체를 메우고 있다. 베이징오리 요리점들은 최고의 맛을 내는 비법 중 하나로 나무 연료가 무엇인지를 내외에 자랑한다. 대추나무는 가장 애용되는 오리굽기용 연료이다.
대추나무로 구운 원조의 맛
와인과 함께 먹은 베이징오리는 원조 요리를 실감케 했다. 나무의 향이 아직 남아 있고, 껍질 부분이 바삭바삭하기 때문에 입에 넣자 그대로 녹는 듯했다. 일본 속담에 ‘오리가 파를 등에 지고 오는 듯하다(鴨がねぎをしょってくる)’는 말이 있다. 모든 상황이 너무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말이다. 오리고기 요리에서 파는 찐빵 속의 팥이라 할 수 있다. 리췬은 파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면 곧바로 잘라서 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작지만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려는 리췬만의 정성이다.
죽기 전에 맛봐야할 ‘오리 전문점’ 5곳 제대로 된 오리 맛 보려면 2인 기준 6만원은 투자해야 베이징에서 제대로 된 베이징오리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최소한 1인당 5만원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보통 두 명을 기준으로 오리고기 한 마리에 6만원 정도하고 술이나 음료를 추가하면 전부 10만원 정도가 든다. 1인당 1만원짜리도 있겠지만 그런 식당은 닭이 오리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5만원 정도의 예산권에 들어가는 베이징오리 전문점으로 죽기 전에 반드시 맛봐야 할 유명한 곳 5군데를 소개한다. 취엔쥐더카오야점(全聚德火考鴨店) 1864년 처음 문을 연 오리점으로 전세계에 하나쯤 지부를 갖고 있는 글로벌 레스토랑이다.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41대 부시 대통령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1970년대 중반 미국과 중국이 정식 국교를 맺기 전까지 미국연락대표부의 최고책임자로 일했다. 베이징 주재 당시 부시는 1주일에 한 번씩은 베이징오리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맛도 있지만 친·중외교의 일환으로 베이징오리를 활용한 것이다. 최근 취엔쥐더는 외국만이 아니라 거꾸로 중국 내 체인점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음식점이 망해가는 것 중 하나로 체인점 확장을 들 수 있다. 체인점이 많을수록 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중국여행단이 베이징에 가는 첫날에 들러서 먹는 그룹투어 코스이기도 하다. 폐이팡카오야점(便宜坊火考鴨店) 1855년 창업한 가장 오래된 오리전문점 중 하나이다. 다른 식당과 달리 지방을 빼는 특수한 방식의 조리법으로 인기가 높다. 오리고기의 핵심은 느끼한 지방을 얼마나 많이 빼느냐에 달려있지만 반대로 지방이 갖고 있는 고소한 맛을 살리는 데에도 있다. 오랜 경험과 특수한 조리법으로 많은 손님을 끌고 있다. 다둥카오야점(大董火考鴨店) 중국 최고의 셰프로 알려진 둥(董)씨 형제가 운영하는 곳으로 오리의 지방을 35%까지 줄인 혁신적인 요리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원래 1985년 베이징카오야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곳으로 다른 전통 음식점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현대식 건물과 깨끗한 환경, 서구식 서비스로 베이징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식당으로 자리잡았다. 손님이 먹을 오리를 직접 고르면 과실나무가 들어있는 화로에서 구워준다. 주화산카오야점(九花山火考鴨店) ‘동쪽의 다둥(大董), 서쪽의 주화산(九花山)’으로 불릴 정도로 베이징오리고기의 양대산맥에 해당하는 곳이다. 하루에 200마리 한정으로 오리고기를 준비한다고 한다. 오리고기 전문점의 경우 하루판매량을 몇 마리까지로만 제한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운 곳이다. 야왕(鴨王) 오리 100마리당 한 마리 정도 나온다는 이른바 황제오리(皇帝鴨)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황제오리는 한 마리당 10만원 정도로 보통 오리보다 배 정도 비싸다. 지방을 빼기보다 지방이 갖고 있는 고소함을 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베이징오리의 유래 600년 전 궁중요리로 개발 베이징오리고기의 출발은 명(明)의 영락제(永樂帝)에서부터 시작된다. 1420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남쪽 지방의 오리가 베이징으로 들어오면서 베이징오리고기라는 이름의 음식이 탄생한 것이다. 난징의 애칭인 금릉(金陵)을 앞에 붙인 금릉오리(金陵火考鴨)란 말도 등장했다. 역사상 베이징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베이징오리 요리점은 폐이팡(便宜坊)으로 1416년에 개업했다. 베이징에 있는 현재의 폐이팡은 원조 폐이팡에서 분리된 것으로 1855년을 창업연도로 삼고 있다. 베이징오리고기는 처음부터 궁중요리로 개발됐다. 명조에서 시작됐지만 실제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청조부터이다. 황실에 조달하기 위한 오리 사육장이 베이징 주변에 생긴 것은 당연하다. 허베이성(河北省)까지 확산된 오리농장은 지방이 많은 오리가 고가에 팔린다는 점을 알고 갖가지 노하우를 동원해 ‘뚱보오리’ 사육법을 개발한다. 지금의 저지방 오리고기와 달리 북방민족인 청의 황실은 기름으로 뒤덮인 오리고기를 즐겼다. 당시 가장 유명한 사육법은 대나무를 이용해 고칼로리의 사료를 위로 직접 밀어넣는 ‘톈야(?鴨)’ 방식이다. 프랑스의 거위간 요리인 푸아그라를 위해 거위 간을 크게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킬 경우 더더욱 살이 찌기 쉽다. 중국에서 주입식 일방교육을 ‘톈야식 교육’이라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오리 사육법을 배경으로 한 말이다. 최근 다이어트 오리도 등장하면서 사육법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베이징 오리고기는 부화 이후 60일부터 65일째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몸무게가 6㎏ 정도 되는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