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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장두노미’는 원나라 때 문학작품에서 유래한 말

굴어당 2011. 1. 20. 15:41

올해의 사자성어 교수신문이 10년째 발표

올해 ‘장두노미’는 원나라 때 문학작품에서 유래한 말

박영철 차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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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는 습성이 있다. 이를 반영하듯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는 ‘올해의 사자성어’라는 뉴스가 있다.
   
   2010년 경인년에도 어김없이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발표됐다. 지난 12월 19일 인터넷을 필두로 방송과 20일자 석간·조간 신문에 대부분 게재된 ‘장두노미(藏頭露尾)’가 그것이다. 장두노미는 직역하면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이다. 진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속으로 감추면서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빗대기도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 말은 발표 즉시 유명세를 탔다. 포털 검색창에 ‘장두노미’라고 쳐보면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뜨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교수신문’에서 발표한다. 이 신문이 처음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 것이 지난 2001년이니, 올해로 10년째인 셈이다.
   
   
   진실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 드러나
   
    교수신문에 따르면, 장두노미는 중국 원나라의 문인 장가구(張可久)가 지은 ‘점강진(點絳唇)·번귀거래사(?歸去來辭)’와 같은 시기에 왕엽(王曄)이 지은 ‘도화녀(桃花女)’라는 문학작품에서 처음 나왔다. 이 두 작품에서 장두노미는 머리가 썩 좋지 않은 편에 속하는 타조가 위협자에게 쫓길 때 머리는 덤불 속에 숨기지만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로 쓰였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문학을 비롯한 관련 전공 교수들의 추천 △사전 조사 △본 설문 등 3단계를 거쳐 선정된다.
   
   올해의 경우 11월 16일부터 12월 7일까지 기세춘 재야 사학자, 권오영(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사), 김동준(이화여대·한시), 성백효(한국고전번역교육원·한문산문), 윤재근(한양대·국문학), 윤채근(단국대·한문소설), 이기동(성균관대·유교철학), 이승환(고려대·유교철학), 임재해(안동대·민속학), 장현근(용인대·동양정치사상) 교수 등 관련 학자 10명으로부터 사자성어 20개를 추천 받았다.
   
   이후 교수신문 논설위원, 편집기획위원 15명을 대상으로 사전조사를 거쳐 후보 5개를 추려냈다. 마지막 단계인 본 설문은 지난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교수신문 필진과 주요 일간지 칼럼 필진, 주요 학회장, 전국대학 교수(협의) 회장 등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응답자 212명 가운데 41%가 ‘장두노미’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교수신문이 공개한 ‘藏頭露尾’ 붓글씨는 소석(素石) 이종찬 동국대 명예교수(국문학)가 썼다.
   
   장두노미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올해 영포 게이트,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졸속 협상,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 수많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해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교수 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를 채택한 것은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어두운 시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추천→사전조사→본설문 등 3단계 거쳐 선정
   
지난 10년간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에는 한국 사회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첫 해인 2001년에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선정됐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뽑혔다. 2003년에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인데,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책 혼선이 빚어지고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인 것이 선정 이유였다. 2004년의 당동벌이(黨同伐異) 역시 한 해를 적확히 묘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는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했다. 같은 파끼리는 한 패가 되고 다른 파는 배척한다는 뜻의 당동벌이가 선정된 이유였다.
   
   2005년의 상화하택(上火下澤)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과 분열을 일삼은 행태를 꼬집었다. 2006년의 밀운불우(密雲不雨)는 여건이 조성됐지만 성사되지 못해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묘사한다. 2007년에는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 꼽혔다.
   
   2008년의 호질기의(護疾忌醫)는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비유한 말인데 그 해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 촛불시위, 4대강 정비 등을 놓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2009년 사자성어인 방기곡경(旁岐曲逕)은 일을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교수신문 편집주간 최영진 중앙대 교수
   
   “하루 빨리 태평성대가 올해의 사자성어가 되길”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001년 11월의 일이다. 당시 교수신문 편집회의에서 누군가 “우리도 한 해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참석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채택됐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작업이 그해 12월에 처음 발표된 ‘올해의 사자성어’였고 이 지적(知的) 작업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라고 한 것은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한 해를 한자(漢字) 한 글자로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원자력발전 사고라든지 핵을 둘러싼 이슈가 부각된 해는 ‘核(핵)’으로 선정하는 식이다. 일본의 경우 올해 113년 만의 더위에 시달린 탓에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지난 12월 10일 올해의 한자를 ‘暑(서)’로 선정했다.
   
   교수신문 편집주간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행 초기 편집진들 사이에 ‘일본과 똑같은 형식을 따라하기보다 우리나라는 대중들에게 사자성어가 익숙하니 사자성어 형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의 반향은 예상외로 컸다. 첫 사자성어로 선정된 ‘오리무중’은 친숙한 사자성어이기도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급박하게 돌아가던 그해를 절묘하게 묘사해 사회적 공감을 샀다. 교수신문의 발표가 있자마자 ‘오리무중’은 전국의 주요 언론 보도와 칼럼에 인용되기 시작했다. 교수신문의 성가(聲價)가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교수신문은 1992년에 설립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세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매체였다.
   
   히트 퍼레이드는 이어졌다. 2002년의 ‘이합집산’과 2003년의 ‘우왕좌왕’도 발표 즉시부터 인구에 회자됐다. 최대 히트작은 2004년의 ‘당동벌이’였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을 둘러싼 공방전을 족집게처럼 묘사했다는 점과, 처음으로 대중에게 생경한 사자성어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반향을 낳았다.
   
   이후 ‘올해의 사자성어’는 주역에 나오는 ‘상화하택’처럼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최 교수는 “편집진들 사이에서 너무 어려운 말은 가급적 지양하자는 움직임도 있다”며 “한 해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심하다보니 어려운 말도 선정되는 것이지 현학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초대 편집국장을 지내는 등 교수신문 산파역의 한 명인 최 교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 “지적 하향평준화 분위기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는 인문학적 공감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갈등이 치유되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국태민안(國泰民安), 태평성대(太平聖代)나 강구연월(康衢煙月) 같은 말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