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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리커창… 거물 정치인 배출, 중국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도시.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

굴어당 2011. 1. 20. 16:01

과기대 등 연구소 포진 과학기술개발의 중심지
‘중국 최고 명산’ 황산 한국 관광객 북새통

▲ 안후이성 황산 근교의 굉촌. photo 조선일보 DB
안후이성(安徽省)은 중국 화둥(華東)지방의 서북부에 있다. 본래 오(吳)나라와 초(楚)나라의 땅이던 안후이성은 몽골이 지배한 원(元)나라 때는 저장성(浙江省)에 속했다.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 때인 1667년에 이르러서야 안칭(安慶)과 휘주(徽州) 두 지방의 앞글자를 각각 따서 ‘안후이’란 지명이 탄생했다.
   
   안후이성의 면적은 약 14만㎢로 중국 전체 면적의 1.5%이다. 인구는 약 7000만명으로 그중 한족이 90%가량을 차지한다. 안후이성의 성도(省都)는 인구 492만명의 허페이(合肥)다. 안후이성은 허페이를 중심으로 우후(蕪湖), 안칭(安慶) 등 22개시 44개구(區) 56개현(縣)으로 구성돼 있다.
   
   
   조조·주원장·포청천의 고향
   

안후이성 출신들은 중국을 좌지우지해왔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의 호적상 고향이 안후이성 츠지(績溪)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부총리는 안후이성 딩위안(定遠) 출신이다. 때문에 후진타오와 리커창은 안후이성 출신 정치세력을 일컫는 ‘안후이방(安徽幇)’으로 분류된다.
   
   안후이성은 예로부터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하다. 춘추전국시대 정치가였던 관중(管仲)을 비롯해 장자(莊子), 삼국지의 조조(曹操)와 명의(名醫) 화타(華陀), 명(明)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이 안후이 출신이다. TV를 통해 소개되며 ‘개작두를 대령하라’는 유행어를 남긴 판관 포청천(包靑天·포증)의 고향도 안후이성이다.
   
   청 말기 외교를 좌우한 이홍장(李鴻章)도 안후이성 허페이 출신이다. 안후이성의 무장 군벌로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한 이홍장은 양무운동, 청일(?日)전쟁 등을 주도한 거물이었다. 이홍장은 오늘날 안후이성 출신의 정치집단을 일컫는 안후이방의 시조다. 안후이성 허페이에는 이홍장이 살던 옛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안후이성은 또 상인(商人)으로 유명하다. 안후이성 상인을 뜻하는 휘상(徽商)은 중국을 대표하는 상인 가운데 하나다. 휘상은 산시성(山西省) 상인을 뜻하는 진상(晉商)과 ‘천하제일상인’ 자리를 두고 겨뤘다.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원저우(溫州) 상인과 달리 휘상은 유교적 기풍을 바탕으로 돈을 번 다음 관직에 진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성(商聖)’ 호설암(胡雪巖)은 안후이성 츠지 출신의 대표적 휘상이다. “돈을 벌려면 칼날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아야 한다”는 말을 남긴 호설암은 청말 군수품 조달을 통해 중국 상권을 평정하고 관직까지 하사받았다. 루쉰(魯迅)은 ‘중국 5000년 역사상 최후의 상인’으로 호설암을 언급했다. 후진타오 주석의 부친 후징즈(胡靜之)도 잡화상을 하며 차를 팔던 휘상 출신으로 호설암과 동향, 동성이다.
   
   안후이성은 장강(長江)과 회하(淮河) 두 물줄기에 비스듬히 걸쳐 있다. 안후이성 동남부의 첸탕강(錢塘江) 상류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장강과 회하 두 물줄기의 영향을 받는다. 회하에는 협산(峽山), 경산(慶山), 부산(浮山) 등 ‘삼협(三峽)’이 있다. 안후이성에는 중국의 5대 담수호 가운데 면적만 800㎢에 달하는 차오후(巢湖)가 있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
   

▲ 안후이성 구화산 화성사의 등신불. photo 조선일보 DB

안후이성 황산(黃山)은 중국 제일의 명산(名山)으로 손꼽힌다. 해발 1860m의 연화봉을 중심으로 71개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는 탄식이 나올 만큼 봉우리마다 전해지는 전설로 가득하다. 황산은 지난 199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최근에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안후이성 서남쪽 청양현에 있는 구화산(九華山)도 유명하다. 동남제일산으로 불리는 해발 1342m의 구화산은 계곡 속 폭포와 기암괴석,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중국 지장(地藏) 불교의 성지인 구화산은 우리나라 불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구화산 화성사(化城寺) 육신보전(肉身寶殿)에는 신라에서 건너간 김교각(金喬覺) 대사의 등신불(等身佛)이 모셔져 있다. 신라 성덕왕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교각 대사는 1300년 전 구화산으로 건너가 지장 도량을 건설했다. 특히 김교각 스님은 입적할 때 “자신의 육신이 썩지 않거든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세계적 태양전지 업체 선테크파워 실험장
   
   허페이는 중국 과학기술개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허페이에는 중국과학원 직속의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이 있다. 중국과기대를 중심으로 100여개에 달하는 각종 고등교육기관과 연구소가 포진해 있다. 허페이 경제개발구 안에 있는 대학성(大學城·대학도시)에는 약 10만명의 고급연구인력이 과학기술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태양전지 모듈 제조업체인 선테크파워(Suntech Power·尙德)의 태양전지 실험장이 허페이에 있다. 지난 2005년 뉴욕 증시에 상장한 선테크파워는 2006년 일본의 태양전지 업체 MSK를 인수하면서 세계적 태양전지 업체로 부상했다. 허페이에 있는 첨단과학기술연구단지에서는 태양광 에너지와 관련된 첨단 기술을 배양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내륙도시 허페이는 지금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허페이 도심은 도로, 지하철, 재개발로 건설현장을 방불케 한다. 동부해안도시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지역에는 중앙 정부로부터 위안(元)화의 무차별 지원사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허페이는 전년 대비 17.3%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로써 허페이는 6년 연속 17%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허페이의 1인당 연간 주민소득도 6000달러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허페이의 주민소득은 1만달러를 이미 돌파한 상하이, 선전 등 동부연해도시보다는 많이 뒤처지는 수치다.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소비진작 정책으로 안후이성의 소비자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 현재 안후이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루 하루의 고된 생활과 가난의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는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1970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안후이성 중산층의 여유로운 모습은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안후이성의 중산층은 물가 등을 반영해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6000만원 정도의 연수입을 올린다고 보면 된다. 또한 고가의 수입차를 타고 쇼핑센터로 몰려가 한 번 쇼핑하는 데 수천만원씩의 명품을 쇼핑하는 일부 부유층의 모습도 눈에 띈다.
   
   
   포스코·금호고속·녹십자 진출
   
   안후이성에서는 한류 열풍도 거세다. 한국산 의류와 화장품, 신발 등 모든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한국산 제품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 중심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조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TV 드라마다. 안후이성에서 한국산 제품의 인기가 높은 것도 TV드라마의 영향이 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많은 한국 기업과 개인 사업자들이 안후이성 곳곳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포스코, 금호고속, 녹십자, 만도기계를 비롯해 자동차 부품업체 등 상당수 기업이 안후이성에 들어와 있다. 하이닉스의 LCD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한 징둥팡(京東方·BOE)에도 IT와 관련한 한국의 운영진 및 기술 인력이 대거 진출해 있는 상태다.
   
   한국인도 안후이성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한대문화교류유한공사의 조성혜 교수(안후이성 한국상회 고문)는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허페이시의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조 교수는 한·중 교육문화 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 정부로부터 ‘국가우의장’이란 훈장을 받고, ‘천하안휘인’에 선정되는 등 교민사회의 자랑거리다.
   
   또 허페이 시내에서 대형 아웃렛 매장을 경영하는 코스몰유한공사의 공성문 회장은 향후 한국인들의 서비스 산업 진출에 성공 가능성과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공성문 회장은 현재 필자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안후이성 한국상회(한인회) 회장을 맡아 한국 기업인과 교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중국 내 한국기업 및 개인 진출의 성공사례를 모아본 결과 현지 적응과 아울러 겸손한 자세가 성공의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현지 생활의 어려움은 그리운 벗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 교민들은 ‘도전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안후이성의 특산품
   
   선지
   ‘선지(宣紙)’는 안후이성에서 생산되는 고급 종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색채가 아름답고 산뜻하다. 잘 부식되지 않아 마음대로 접을 수 있다. 서화용 고급명지(名紙)로 명나라 때 영락대전(永樂大典)과 청나라 때 사고전서(四庫全書) 등을 집필하는 데 사용됐다. 지금도 오랜 세월 기술이 보존돼 전해 내려온다.
   
   두부
   두부가 처음 만들어진 곳도 안후이성이다. 한(漢)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은 안후이성에서 세계 최초로 두부를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회남자(淮南子)’란 책을 남긴 유안은 한고조 유방(劉邦)의 손자다. 안후이성 회남시 팔공산에서는 매년 두부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녹차
   중국의 10대 명차(名茶) 가운데 안후이성에서만 4종류의 명차가 생산되고 있다. 안후이성에서 생산되는 차로는 황산모봉(黃山毛峰), 태평후괴(太平?魁), 기문홍차(祁門紅茶), 육안과편(六安瓜片) 등이 유명하다.
   
   한약재
   안후이성은 중국 한약재의 수도로 불린다. 안후이성 일대에서 한약재를 재배하고 한약방을 경영한 것은 약 18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도 안후이성에는 약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약재 재배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정선
   
   1958년 충남 당진 출생, 중앙대 졸업, 명성그룹, 일본 소니 CDI 근무, 현정무역 회장, 현 안후이성 한국상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