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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샘] 시문과 서화, 그리고 마음,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굴어당 2012. 4. 19. 20:07

[고전의 샘] 시문과 서화, 그리고 마음

晉帖唐詩覽之

意思自好

足以變化氣質

진첩과 당시를 보면

절로 생각이 좋아지니

사람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질언(質言)’. 청성잡기(靑城雜記)

중국 서예는 위비와 진첩이라 해서 북위는 비석 글씨가 좋고, 동진은 종이나 비단에 쓴 글씨가 좋다는 말이 있다. 진첩의 대표는 왕희지다. 중국은 시의 나라답게 시대별로 걸출한 시인과 다양한 시풍이 있는데, 당시를 제일로 치고, 그 중에서도 이백과 두보를 꼽는다. 예전 아동들이 간단한 시구를 익히던 ‘추구(推句)’ 끝 부분에 ‘문장은 이태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춘향전에는 이몽룡이 과장에서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체를 본받아 글씨를 썼다 하였고,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당시품휘(唐詩品彙)’를 깨알같이 베껴 쓴다는 대목이 있다.

얼마 전에 한 전시회에 가서 김생(金生)의 글씨를 보게 되었는데, 특히 ‘전유암산가서(田游巖山家序)’는 임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뿐만 아니라 보고 있으면 저절로 흥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삼국사기’ 김생 열전에는, 고려의 학사 홍관(洪灌)이 사신을 따라 송나라 수도 변경에 가서 그곳의 관리에게 김생의 글씨를 보여주었더니, 왕희지가 아니면 이런 글씨를 쓸 수 없다며 도무지 믿지 않더라는 내용이 있다.

이덕무는 성대중의 이 글에 “‘좋아하는 사물에 빠지면 뜻을 잃는다’는 말과는 상반되나 이런 묘미도 있다”고 비평을 달았다. ‘서경(書經)’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덕을 잃고 좋아하는 사물에 빠지면 뜻을 잃는다(玩人喪德 玩物喪志)”는 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음이 외물에 사역당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 시와 글씨, 그림음악을 수양의 방편으로 삼으면 사람의 기질이 변한다는 공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형편과 취향에 따라 글씨 한 점, 그림 한 폭을 벽에 걸어 두고 본다면, 삶에 지친 마음도 달래주고 빈혈에 걸린 감성도 되살려주지 않을까. 이런 심미적 감수성은 일상을 윤택하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