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르는 집] [2] 서예가 강암 송성용 집안
마흔에 서예로 만개한 강암, 칭찬대신 스스로 움직이게 해… 먹을 가는
일로 하루를 시작
하철·하경·하춘·하진 네 아들 "아버지께 배운건 정신과 행실"
서예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1913~1999)은 자녀의 손목을 이끌어 붓길을 잡아준 적이 없다. 집안이 온통 서예를 하니까 4남2녀
모두 시키지 않아도 붓대 잡는 일에 익숙했다. 아버지는 다만 지켜볼 뿐이었다. 가끔 칭찬할 만하면 그저 "무던하다"고만
했다.
강암은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 장남은 관선 전주시장을 지낸 송하철(76), 2남은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을 지낸
송하경(71), 3남은 고려대 문과대학장을 지낸 송하춘(69), 4남은 송하진(61) 전주시장이다. 아버지로부터 허튼 칭찬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이 집안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송하철(76)씨는 "제 속에서 자발적으로 뭔가 일어나야 하는 거지,
붓대 잡아주는 훈장 선생님처럼 친절한 게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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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전주 자택에서 찍은 강암 송성용 집안의 가족사진. 4남2녀는 왼쪽부터 복순, 하경, 하철, 하춘, 하진, 현숙씨. /송하철씨 제공
소설가 송하춘씨는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면서 '아버지의 교수법'을 떠올리곤 한다. "학생들이 써온 작품을 읽고 강평할 때 학생은
칭찬받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교사는 칭찬을 남용해선 안 됩니다. 칭찬이 천재를 바보로 만들기도 하잖아요. 하물며 자기 작품을 뜯어고쳐 주길
바라는 학생들에게야 더 말해 뭐합니까."
강암은 평생 상투 틀고 갓 쓰고 한복 입고 살았다. 1954년엔 강암이 잠든 사이에
친구들이 몰래 자신의 상투를 자르자 6개월을 칩거했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여권 사진을 제출했는데 "탈모(脫帽)하고 다시 촬영하라"며 퇴짜 맞은
적도 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왜 불편하게 사느냐"는 질문에 강암은 늘 "나를 평생 지켜준 게 갓과 상투요"라고 답했다.
화선지
앞에 하얗게 앉아 있는 학두루미. 자식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강암은 전북 김제군 백산면 상정리 초가지붕 아래에서 마흔 살이 지나
서예로 만개(晩開)했다. 그만큼 멍울진 기간도 길었다. 송하춘씨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고 안으로 침잠하여 무르익게 한 게 아버지의
상투였다"고 말했다. 의관 정제하고 술주정, 계집질, 노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으로 요약한다. 스스로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하게,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라는 뜻이다. 송하철씨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글이 아니라 정신과 행실"이라고 했다. "먹을 가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항상 새 먹에 새 글씨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그래야 색깔도 곱고 글씨에 생기가 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일필휘지'라는 말은 사치예요.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빼낼 때까지
파지(破紙)를 여럿 냈습니다."
강암이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일이다. 송하춘씨가 아버지 곁에서 잠이 들었는데 퍼뜩 깨어보니 아랫목에
누운 강암이 어둠 속에다 손가락으로 뭔가 자꾸만 쓰고 있었다. "아버지, 안 주무시고 뭐 하세요?" "응, 이 자(字)가 에려워야." 아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못하던 아버지를 보며 숙연해졌다.
서예는 한방에 대박이 터지는 현대판 예술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일도
고전적인 분야다. 이 집안에는 벼루에 먹을 1000번 간 다음에야 붓을 드는 칼칼한 선비의 맛, 완만한 저속의 흐름이 있다.
[이 집안의 보물은]
1940년대부터 쓴 원형 벼루
강암은 1940년대부터 쓴 원형 벼루〈사진〉를 아꼈다. 직사각형 벼루와 달리 원을 그리며 눈을 감고 작품을 구상하면서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벼루에 먹을 대면 1000번 이상 갈며 농도와 점성을 점검한 다음 붓을 들었다. 자식들에겐 ‘먹 갈기’도 수양의 하나다. 송하철씨는 “200번쯤 갈면 힘들고 하기가 싫어져 결국 아버지가 마무리했다”면서 “먹을 갈면서 차분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이 벼루는 전주 강암서예관에 전시돼 있다.
[전통의 눈으로 본 이 집안 교육법]
蓬生麻中 不扶而直(봉생마중 불부이직)
쑥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순자 권학편
삼은 곧게 크는 식물인데, 옆으로 자라는 쑥도 삼밭에 있으면 삼의 영향을 받아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식물도 이런데, 사람은 두말해 뭐하겠는가. 부모가 본보기를 보일 때 자녀들도 인성을 제대로 갖춘 반듯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호가 시사하듯, 강암 선생은 자기 자신에게 서릿발처럼 엄했다 한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대체로 '일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삼가기(敏於事愼於言)' 때문에 남들에게 감화를 주는 법이다. 요즘 교육의 과오는 자신은 모범을 보이지 않고 교육받는 이들에게만 좋은 일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솔선수범'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강력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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