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번역 활동 공로패 받은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
20대 후반에 매료돼 美 유학 포기
한문 교육도 병행… 3만여명 배워
최근엔 DB 개발 등 정보화 주력
이계황(77) 전통문화연구회장은 우리나라 한문 고전 번역의 산증인이다. 그는 한국 고전 번역의 산실인 민족문화추진회(이하 민추)가 만들어진 직후인 1966년 5월 서무계장으로 들어가 편집부장·사무국장·이사를 거치며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민추를 떠난 뒤에는 1988년 전통문화연구회를 만들어 동양 고전의 번역과 보급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오는 30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한국 고전 번역 50년' 기념식에서 원로 한학자인 정태현(79)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와 함께 공로패를 받는다.
이씨는 민추 재직 시절 보람 있었던 일로 한국 고전 번역의 장기 계획 수립과 회관 마련을 들었다. 민추는 '연려실기술'을 시작으로 '조선왕조실록' 등을 번역했는데 좀 더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윤남한·이동환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고전 현대화 계획서를 만들었다. 또 설립 이래 이곳저곳 떠돌던 민추는 노신영 국무총리와 이한동 민정당 사무총장 등의 도움으로 1986년 구기동에 회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씨는 이 과정에서 책을 만들고 사무실을 운영하느라 과로로 쓰러져 민추를 떠나게 됐다.
이씨는 건강이 좀 회복되자 1988년 전통문화연구회를 설립했다. 안병주·송재소·신승운 교수, 한학자 성백효·정태현씨 등 민족문화추진회에 있을 때 맺었던 인연이 자산이 됐다. 서울 낙원상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동양 고전 번역과 한문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민추에서 우리 고전을 번역하면서 그 뿌리가 되는 동양 고전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기본적인 고전조차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집중적으로 작업했지요. 또 동양 고전을 이해하는 저변을 넓히려면 한문 보급이 필요해서 일반인 교육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전통문화연구회는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소학(小學), 고문진보(古文眞寶), 통감절요(通鑑節要), 장자(莊子), 설원(說苑) 등을 국역했고, 중국 유가(儒家)의 대표 경전들에 주석과 해설을 붙인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대학생 대상으로 시작했던 한문 교육은 점차 중년과 여성 대상으로 옮겨져 3만3000명이 거쳐 갔다. 디지털 혁명에도 빨리 적응하여 2000년 '사이버 서당'을 개설해 한문 교육에 활용했고, 최근에는 동양 고전의 정보화에도 관심을 가져 '동양고전종합DB' '동양고전어휘DB' 등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이다.
이계황 회장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전통 시대에 중국이 한자 문화권의 중심이었고, 근대 들어 일본이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등을 통해 동양 학술계를 제패했듯이 이제는 한국이 한문 고전과 정보화를 연결해 한자 문화권을 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일의 삼국정립(三國鼎立)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서 문화의 융합을 이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동양 고전의 국역·교육·정보화가 삼위일체가 돼야 합니다."
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도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이 회장은 "팔자에 맞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병이 낫는다"며 웃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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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글 專用만 애국인가?
한자교육이 반민족 행위라는 주장, 피해의식 사로잡힌 문화쇄국주의
우리말의 70% 차지하는 한자어는 中·日과 다른 역사·관습적 國字
외국 학자들 "한국 문화 알기 위해 한자·한문 교육 반드시 필요하다"
"마흔 이하 젊은이들은 한자(漢字)를 몰라서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많이 생겨요. 한자는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의 큰 범주에서 봐야 해요. 한국 문화를 알게 하려면 한자와 한문 교육이 필요합니다."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 전 한양대 석좌교수가 최근 본지 인터뷰 중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놀랐다"며 한 말이다. 한자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한국 문화를 잘 알게 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한글만 쓰고 배우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세종대왕도 한글·한자 함께 썼다"
"한글은 온 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로서 우리의 자랑이고 보물이다. …한자 혼용은 왜정시대 식민지 교육 찌꺼기로서 이제 피어나는 우리 자주문화와 '한류' 바람을 가로막는 반민족 행위다." 한글 관련 단체들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초등학교 한자 교육 절대로 안 된다'란 제목의 성명서 일부다. 한글로만 표기하는 것이 민족적 자주성(自主性)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한자 조기(早期) 교육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한글 전용론자의 이 같은 시각은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지 오래인 한자에 대해 '외래문화'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문화쇄국주의'란 비판을 받고 있다.
심재기 전 국립국어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이 성명서에 반박하며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외부 문물을 수용할 수 있을 때 그 민족의 발전은 보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인인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지난해 한 언론 기고에서 "지금은 열린 자세로 문화적 교류를 하면서 동시에 자국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라며 "그렇다면 더더욱 한국어 문자에서 한자를 빼낼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자 혼용이 왜정시대(일제 강점기) 잔재'라는 주장도 우리 역사에서 한자 사용의 역할을 도외시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은 한자어는 한자로, 고유어는 훈민정음으로 구별해 적었다. 김창진 초당대 교수(국문학)는 "세종대왕에서 비롯된 국한자(國漢字) 혼용은 조선왕조는 물론 개화기, 일제 강점기, 광복 이후 1980년대까지 한국어 문자 표기에서 주류(主流)였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딴 나라 문화유산인가
'한글만이 우리 고유(固有) 문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2000여년 동안 우리 민족이 사용해 온 한자는 '고유한 것'이 아니고 570년 전 창제한 한글만 '고유한 것'이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런 논리라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은 5200만 자(字)가 모두 한자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 문화유산'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한자 문맹(文盲)' 현상은 한자어가 우리 고유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객관적 사실조차 희석시키고 있다. 한자·한문으로 된 수많은 고전(古典) 독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현대 우리말 어휘 70%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한글로 발음만 표기하는 데 그치도록 하는 것이다.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국문학)는 "우리말은 한자어로 된 어휘가 인체의 척추처럼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자 사용 반대는 우리말 언어의 가장 큰 특색이자 장점인 표의(表意·뜻을 나타냄) 문자와 표음(表音·소리를 나타냄) 문자의 혼용을 막아 우리말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사는 곳'이라는 말을 그대로 써도 될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거처(居處)' '처소(處所)' '거소(居所)' '우거(寓居)' '주소(住所)' 등의 다양한 한자어 표현 중 하나를 골라 쓰면 더 적확한 용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말들을 한글로만 표기하면 의미상 차이를 분간하기 힘들다.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은 "우리가 쓰는 한자는 소리·형태·의미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우리 문자이며 역사적·관습적 국자(國字)로 봐야 한다"며 "한자를 공용 문자로 인정하지 않고 외국 문자로 취급하면 우리 정신문화에서 과거와 현재의 맥을 끊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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