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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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丘風雅 中 七律

굴어당 2011. 5. 22. 19:17

靑丘風雅 中 七律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동하서당

 

 

 

양섬수재에게 답하며[酬楊贍秀才]

최치원(崔致遠)

바다 떼배가 해 건너 한 번씩 돌아오긴 하지만 / 海槎雖定隔年回

재주 없으니 비단옷 입고 고향에 못 돌아가네 / 衣錦還鄕愧不才

나뭇잎 질 때 무성에서 잠시 이별했다가 / 暫別蕪城當葉落

핀 꽃을 놓칠세라 봉래 섬 멀리 찾았것다 / 遠尋蓬島趁花開

골짜기의 꾀꼬리는 하마 높이 날았으리만 / 谷鶯遙想高飛去

요동의 흰 돼지는 뻔뻔히 또 바치려 하네 / 遼豕寧慙再獻來

장한 마음으로 뒤에 또 다시 만나지 않으려나 / 好把壯心謀後會

광릉(무성(蕪城)인데, 지금 강소성(江蘇省) 강도현(江都縣) 동북) 풍월에 부디 함께 술잔 드세 / 廣陵風月待銜杯

[주D-001]바다 떼배가 …… 하지만 : 바닷가에 해마다 팔월(八月)이면 어디서인지 떼배[槎]가 왔다가 간다 한다.

[주D-002]골짜기의 …… 날았으리만 : 꾀꼬리가 그윽한 골짜기에서 높은 나무로 옮아간다는 것은 출세를 뜻한다.

[주D-003]요동(遼東)의 흰 돼지 : 옛날에 요동에 돼지가 있었는데 머리가 흰 새끼를 낳았으므로, 기특히 여겨 임금께 바치려고 가다가 하동(河東)에 이르러 보니, 거기 돼지는 모두 흰것이어서 부끄러워 돌아왔다는 내용이 《한서》에 보인다. 하찮은 재주를 뽐냄에 비유한 것이다.

 

 

 

벌판의 불붙는 풀[野燒]

최치원(崔致遠)

바라보매 문득 깃발이 펄럭펄럭 / 望中旌旆忽繽紛

군사들이 변방을 쳐 나가며 횡행하는 듯 / 疑是橫行出塞軍

사나운 불꽃이 하늘을 찌르니 지는 해도 무색하고 / 猛焰燎空欺落日

미친 연기가 벌판에 뻗어 가는 구름 끊는구나 / 狂煙亘野截歸雲

마소를 침에 방해된다 탓하지 마소 / 莫嫌牛馬皆妨牧

여우ㆍ삵이 모두 소굴을 잃음이 기쁘지 않은가 / 須喜狐狸盡喪群

다만 두려운 건 바람이 산 위에까지 몰고 가서 / 只恐風驅山上去

옥과 돌 차별도 없이 일시에 불붙는 일 / 虛敎玉石一時焚

[주D-001]옥과 돌 …… 불붙는 일 : 《서경(書經)》에, “곤강(崑崗)에 불이 붙으면 옥과 돌이 다 탄다.”는 말이 있는데, 선(善)ㆍ악(惡)이 다 해를 입음을 뜻한다.

 

 

 

장진사 교가 마을에 살면서 병중에 부친 시를 화답한다. 교의 자는 송년[和張進士喬村居病中見寄喬字松年]

최치원(崔致遠)

시의 명성 사해에 떨치니 / 一種詩名四海傳

낭선이 송년과 어떠한가 / 浪仙爭得似松年

소아(시(詩))가 신격을 드러내어 / 不唯騷雅標新格

능소 행장(출처(出處))을 갖고 옛 어진이를 이었도다 / 能把行藏繼古賢

교교한 달 아래 명아주 지팡이 짚고 / 藜杖夜携孤嶠月

갈대 주렴에는 먼 마을 연기 걷히며 / 葦簾朝捲遠村煙

병이 들자 장빈 글귀를 읊어 / 病來吟寄漳濱句

성에 들어가는 어옹의 뱃편에 부치노라 / 因付漁翁入郭船

[주D-001]낭선(浪仙) : 당(唐) 나라의 시인 가도(賈島)의 자이다. 그가 고고(孤高)한 시풍으로 이름을 떨쳤다.

[주D-002]장빈(漳濱) : 후한(後漢)의 시인 유정(劉楨)이 장빈(漳濱)에 병들어 누워서 지은 시(詩)가 있으므로 그것을 장빈(漳濱)이라 한다.

 

 

 

구성궁 회고(九成宮懷古)

박인범(朴仁範)

옛날 문황께서 천하를 통일한 때에 / 憶昔文皇定鼎年

사방이 무사하여 임천에 노니셨더니 / 四方無事幸林泉

노래와 쇠북소리 중천에 멀리 사무쳤고 / 歌鍾響徹煙霄外

우림군 호위병들이 나무 앞에 줄지었었지 / 羽衛光分草樹前

옥 누각 금 섬돌엔 푸른 안개 어울리고 / 玉榭金階靑靄合

푸른 다락 붉은 난간엔 흰 구름이 잇따랐지 / 翠樓丹檻白雲連

관과 검을 버리신 교산 달을 생각하니 / 追思冠劍橋山月

천고의 지나는 사람 모두 눈물짓누나 / 千古行人盡慘然

[주C-001]구성궁(九成宮) : 수(隋) 나라의 인수궁(仁壽宮)으로 피서(避暑)궁이었으며, 당태종(唐太宗)이 그 궁을 수리하여 피서할 때 이름을 고쳐 구성이라 하였다 한다.

[주D-001]교산(橋山) : 황제의 능(陵)인데, 여기서는 태종이 관검(冠劒)을 버리고 죽은 곳을 말한다.

 

 

 

경주(涇州) 용삭사 각에서 운서상인에게 부친다[涇州龍朔寺閣兼柬雲棲上人]

박인범(朴仁範)

나는 듯한 선각이 푸른 하늘에 솟았으니 / 翬飛仙閣在靑冥

월궁의 피리소리가 역력히 들리는 듯 / 月殿笙歌歷歷聽

등불은 반딧불 흔드는 듯 새의 길을 비추고 / 燈撼螢光明鳥道

사닥다리는 무지개를 뻗친 듯 바위 문에 이르누나 / 梯回虹影到岩扄

인생은 흐르는 물 따라 어느 때 그칠고 / 人隨流水何時盡

대는 찬 산에 띄어 있어 만고에 푸른 것을 / 竹帶寒山萬古靑

시비와 공색의 이치를 물어보니 / 試問是非空色理

백 년간 취했던 시름 금방 훌쩍 깨어라 / 百年愁醉坐來醒

[주C-001]경주(涇州) : 지금의 감숙성 경천현(涇川縣)으로 주 목왕(周穆王)이 서왕모(西王母)와 만나 잔치했다는 요지(瑤池)이며, 이 시는 박인범의 대표작으로 특히 3ㆍ4가 경구(警句)인데,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 화국(華國)의 명수(名手)로 예를 든 것이다.

[주D-001]새[鳥]의 길 : 산길이 험하여 나는 새나 넘을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주D-002]시비(是非)와 공색(空色) :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색이 곧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라는 말이 있다. 일체 형질(形質)과 모양이 있는 것을 색이라 이르는데 색은 기실 공이라 한다.

 

 

 

강남 이처사의 집을 회상하며(憶江南李處士居)

최광유(崔匡裕)

강남에 옛날 찾아갔던 대공의 집 / 江南曾過戴公家

문 앞 빈 강에 새벽놀이 잠겼었다 / 門對空江浸曉霞

달 아래 앉아 꽃다운 술병엔 죽엽주(술 이름)를 기울였고 / 坐月芳樽傾竹葉

봄 놀이 목란 배는 복숭아 꽃에 둥실 떴지 / 遊春蘭舸泛桃花

뜰 앞의 이슬 연꽃은 뜰에 붉게 비치었고 / 庭前露藕紅侵砌

창 밖의 갠 산은 푸른 빛이 사창으로 들어왔지 / 窓外晴山翠入紗

예 놀던 일 회상하며 밤마다 꿈꾸노니 / 徒憶舊遊頻結夢

봄바람에 초췌한 신세로 서울서 우는 나 / 東風憔悴泣京華

 

 

 

장안 춘일 유감(長安春日有感)

최광유(崔匡裕)

삼옷에 길거리의 먼지를 털기 어려우니 / 麻衣難拂路岐塵

새벽에 거울 보니 흰 털도 새로워라 / 鬢改顔衰曉鏡新

상국의 좋은 꽃들은 시름 속에 곱구나 / 上國好花愁裏艶

내 고향 꽃다운 나무는 꿈속의 봄일 뿐 / 故園芳樹夢中春

조그만 배로 바다에나 떠갈 생각 / 扁舟煙月思浮海

여윈 말 타고 관하에 나루 묻기도 지쳤네 / 羸馬關河倦問津

형설의 처음 뜻을 아직도 못 이뤘으니 / 祗爲未酬螢雪志

버들에 꾀꼬리 소리 울어도 마음 몹시 상하네 / 綠楊鶯語大傷神

[주D-001]삼옷[麻衣] : 당(唐)ㆍ송(宋) 때에 과거에 오르지 못한 선비가 입는 옷이다.

 

 

 

나부산(羅浮山)으로 들어가는 진사(進士)조송(曹松)을 보내며[送曹進士松入羅浮]

최승우(崔承祐)

비 개고 구름 걷히고 자고새는 나는데 / 兩晴雲斂鷓鴣飛

고갯마루 시냇가에서 그리울 일 말하네 / 嶺嶠臨流話所思

염차의 광생은 부 짓기를 사양하라 / 厭次狂生須讓賦

선성 태수 제 어찌 시를 말하리 / 宣城太守敢言詩

달 속의 계수를 찾아 험한 하늘에 안 오르고 / 休攀月桂凌夭險

연하를 좇아 위태한 세상을 피해 가네 / 好把煙霞避世危

칠십 긴 시내 세 동천 안이 / 七十長溪三洞裏

일후에 그대로 이름 이뤄도 마땅하리 / 他年名遂也相宜

[주C-001]나부산(羅浮山) :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명산. 진(晉) 나라 갈홍(葛洪)이 이곳에서 선술(仙術)을 얻었다 한다.

[주D-001]염차(厭次)의 광생(狂生) : 염차(厭次)는 고을 이름. 한대(漢代)의 부평(富平)ㆍ동방삭(東方朔)이 평원(平原) 염차 사람으로 자칭 ‘염차의 광생’이라 하였으며, 그는 해학에 뛰어나고 사부(辭賦)에도 능했다.

[주D-002]선성 태수(宣城太守) : 남조(南朝)의 시인 사조(謝眺)가 이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었다.

[주D-003]칠십 긴 시내 세 동천(洞天) : 나부산이 유심(幽深)하고, 괴기(塊奇)하여 그 안에 긴 시내가 70군데이고, 동천(洞天)이 세 군데가 있다.

 

 

 

등석(燈夕)

김부식(金富軾)

성과 궁궐이 깊고 엄한데 경루가 길다城闕深嚴更漏長

등불 산과 불나무가 어울려 찬란해라 / 燈山火樹桀交光

가는 봄바람에 능라의상이 너훌너훌 / 綺羅縹緲春風細

서늘한 새벽달 아래 금빛ㆍ푸른빛 선연해라 / 金碧鮮明曉月涼

어좌는 하늘 북극에 드높이 마련되고 / 華蓋正高天比極

옥로는 대궐 중앙에 마주 대해 놓여 있네 / 玉爐相對殿中央

임금님 공묵하사 성색을 안 즐기시니 / 君王恭默疏聲色

이원의 제자들아 백보장을 자랑 마소 / 弟子休誇百寶粧

[주D-001]이원(梨園)의 제자(弟子)들 : 이원제자((梨園弟子)ㆍ악공(樂工)ㆍ여기(女妓)들. 이원은 당현종(唐玄宗)이 영인(伶人)들을 모아 음악을 교수하던 곳이다.

 

 

 

대국 유감(對菊有感)

김부식(金富軾)

늦가을 철에 온갖 풀 다 말라졌는데 / 季秋之月百草死

뜰앞 국화만이 서리를 능멸하고 피었구나 / 庭前甘菊凌霜開

풍상에 하는 수 없이 점점 시들어가도 / 無奈風霜漸飄薄

벌과 나비는 다정하여 아직 빙빙 감도네 / 多情蜂蝶猶徘徊

두목은 취미에 올랐고 / 杜牧登臨翠微上

도잠은 흰 옷 입은 사람을 바랐네 / 陶潛悵望白衣來

옛 사람들 생각하며 세 번 탄식하노라니 / 我思古人空三嘆

명월이 문득 황금 술병에 비춰 오누나 / 明月忽照黃金罍

[주D-001]두목(杜牧)은 취미(翠微)에 올랐고 : 당 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가 9월 9일에 적은 시에, “손과 더불어 술병을 들고 취미에 올랐다[與客携壺上翠微].”는 구절이 있다.

[주D-002]도잠(陶潛)은 흰 옷 입은 사람 : 도잠이 9월 9일에 술이 없어 울타리 가에 나가 바라보니 국화를 손에 따들고 흰 옷 입은 사람이 오는데,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술을 보내온 것이었다.

 

 

 

장원정(長源亭)

정지상(鄭知常)

우뚝 솟은 쌍궐이 강가를 베고 있네 / 岧嶢雙闕枕江濱

맑은 밤에 티끌 한점 안 이누나 / 淸夜都無一點塵

바람 풍긴 배돛은 구름인양 조각 조각 / 風送客帆雲片片

이슬 엉긴 궁 기와는 옥 비늘인가 / 露凝宮瓦玉鱗鱗

푸른 버들 속 문닫는 팔구 집 / 綠楊閉戶入九屋

밝은 달에 발 걷은 두서너 사람 / 明月捲簾三兩人

아득한 신선 고장 어느 곳에 있다던고 / 縹緲蓬萊在何處

꿈 깨니 한창 봄 꾀꼬리 우네 / 夢闌黃鳥囀靑春

[주C-001]장원정(長源亭) : 고려 문종(文宗) 10년(1056)에 창건한 이궁(離宮). 현 개풍군(開豊郡)광덕면(光德面)유정동(柳井洞)영좌산(領座山) 남록(南麓)에 유지(遺址)가 있음. 고려 역대의 왕이 자주 그곳에 유행(遊幸)하였다.

 

 

 

제 변산 소래사(題邊山蘇來寺)

정지상(鄭知常)

적막한 맑은 길에 솔 뿌리가 얼기설기 / 古徑寂寞縈松根

하늘이 가까워 두우성을 숫제 만질 듯 / 天近斗牛聊可捫

뜬구름 흐르는 물 길손이 절간에 이르렀고 / 浮雲流水客到寺

단풍잎 푸른 이끼에 중은 문을 닫는구나 / 紅葉蒼苔僧閉門

가을 바람 산들산들 지는 해에 불고 / 秋風微涼吹落日

산 달이 차츰 훤한데 맑은 잔나비 울음 들린다 / 山月漸白啼淸猿

기특도 한지고 긴 눈썹 저 늙은 중은 / 奇哉厖眉一老衲

한 평생 인간의 시끄러움 꿈조차 안 꾸누나 / 長年不夢人閒喧

 

 

 

이미수와 함께 담지의 집에 모여서[與李眉叟會湛之家]

임춘(林椿)

오래도록 유락하여 서울을 떠나서 / 久因流落去長安

초나라 관을 쓰고 남방 음곡썼네 / 空學南音戴楚冠

세월은 꿈깨고 나니 양의 어깻살 익는다 / 歲月屢驚羊胛熟

시와 술로 다시 모이니 추운 때로구나 / 風騷重會鶴天寒

10년 동안 살아온 일을 등돋우고 이야기하세 / 十年計活挑燈話

반 세상 허튼 공명을 거울 당겨 들여다 보네 / 半世功名抱鏡看

늙어 후배들 따라다니는 것 스스로 우스워라 / 自笑老來追後輩

글 생각 벼슬할 뜻이 둘 다 쇠한 주제에 / 文思宦意一時闌

[주D-001]세월은 …… 어깻살[胛] 익는다 : 시간이 짧고 빠름. 골리알부(骨利斡部)는 한해(瀚海) 북쪽에 있는데, 거기서 또 북으로 바다를 건너면 낮이 길고 밤이 짧아, 해가 지자 양의 어깻살[羊胛]을 삶아 익을 동안에 동쪽이 벌써 밝는다.

[주D-002]반(半) 세상 …… 들여다 보네 : “훈업은 자주 거울을 본다.[勳業頻看鏡]”는 두보(杜甫)의 시(詩)가 있다. 공명(功名)은 언제 이룰지 모르고 늙어만 간다는 뜻이다.

 

 

 

친구의 시에 차운하다(次友人韻)

임춘(林椿)

얼굴에 먼지 가득 10년간 기구한 신세 / 十載崎嶇面擈埃

조물 애녀석이 나를 늘 시기했네 / 長遭造物小兒猜

나루 길은 멀어 떼로 이르기 어렵고 / 問津路遠槎難到

선단은 언제 익으리 솥을 상기 못 열었네 / 燒藥功遲鼎不開

과거는 아직도 나은의 한을 지녔고 / 科第未消羅隱恨

이소에 부질없이 굴원의 설움을 부쳤것다 / 離騷空寄屈平哀

양양이 제 워낙 지기가 없은 게지 / 襄陽自是無知已

명주가 언제 일찍이 재주 없다 버리셨는가 / 明主何曾棄不才

[주D-001]나은(羅隱)의 한(恨) : 당말(唐末) 시인. 여러번 과거에 응했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주D-002]이소(離騷)에 …… 부쳤것다 : 초사(楚辭)의 한 편(篇), 굴원(屈原)의 작. 굴원이 초(楚) 나라의 종실(宗室)과 대부(大夫)의 참소 때문에 쫓겨나 근심하고 시름하여 지은 것이다. 이(離)는 만남[遭]이요, 소(騷)는 근심이니, ‘근심을 만나 지은 글’이란 뜻이다.

[주D-003]양양(襄陽)이 …… 없은 게지 : 당(唐) 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양양(襄陽) 사람이다. 오언(五言)시에 능하였다. 그가 서울에 왔을 때에 왕유(王維)가 내서(內署)에 숙직하면서 그를 청하여 놀았더니, 현종(玄宗)이 창졸에 나오므로 호연이 상 밑에 숨었는데, 현종이 물으므로 왕유가 사실대로 아뢰니 기뻐하여 불러내어 그의 시를 외우라 하였다. 그는, “재주가 없으니 맹주가 버리시고, 병이 많으매 친구도 성겨지누나.[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란 구를 외우니, 현종이, “경이 짐(朕)에게 구하지 않았었으니 짐이 일찍 경을 버린 적이 없는데.” 라고 하면서 놓아보내었다.

 

 

 

패강 나루터에서 오학사의 운(浿江渡吳學士韻)

김극기(金克己)

전구가 나루에서 검을 끼고 건너니 / 渡口前驅擁劍撾

회오리바람이 땅을 말아 새벽 모래 흩날리네 / 驚風卷地曉飛沙

찬 수염에는 주렁주렁 고드름이 매달리고 / 寒髯颯颯冰凝穟

병든 눈은 흐릿흐릿 눈빛에 어지럽네 / 病眼濛濛雪眩花

고향 생각에 바라보니 구름 더욱 정답구나 / 鄕思望雲增宛轉

나그네길은 기슭을 따라 몇 번이나 비스듬한고 / 客行隨岸幾欹斜

저 건너 수풀 사이에 푸른 기가 펄렁이니 / 隔林隱隱看靑旆

마을이 분명 있으리 술을 사서 마시세 / 遙認前村酒可賖

 

 

 

유 지리산(遊智異山)

이인로(李仁老)

두류산(지리산의 별칭)이 깊어 저녁구름 나직한데 / 頭流山逈暮雲低

만학 천암이 회계와 비슷해라 / 萬壑千巖似會稽

막대를 짚고 청학동(지리산에 있는 선경)을 찾으려는데 / 策杖欲尋靑鶴洞

건너편 수풀에 흰 납의 울음이 들리네 / 隔林空聽白猿啼

누대는 아득한데 삼산(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은 멀고 / 樓臺縹渺三山遠

이끼낀 넉자 글씨 아직도 희미하네 / 苔蘚依俙四字題

도원이 어디냐 물어 보렸더니 / 始問仙源何處是

낙화만 흘러 내리어 어딘지 모르겠네 / 落花流水使人迷

 

 

 

벗과 함께 밤에 이야기하다[與友人夜話]

이인로(李仁老)

이웃 담너머로 술 한병 사다 놓고 / 試問隣墻過一壺

화로를 마주 대하여 수염을 쬐며 앉았네 / 擁爐相對暖髭鬚

낙사의 새 소년들 좇아다니기 싫어서 / 厭追洛社新年少

고양의 옛 술친구 생각하네 / 閑憶高陽舊酒徒

밤중 닭의 울음에 일어나 춤도 추고 / 半夜聞鷄聊起舞

가끔 이를 잡으며 좋은 계책도 말하지 / 幾廻捫蝨話良圖

여보게 내 가슴속에 용도가 굼틀대니 / 胸中磊磊龍韜策

정남장군 군교 한 자리 제발 시켜주게나 / 許補征南一校無

[주D-001]고양(高陽)의 옛 술친구 : 초한(楚漢) 때의 역이기(酈食其)는 처음에 고양 땅의 주도(酒徒)였다. 여기서는 술을 좋아하고 매인 데 없이 방탕한 사람을 말한다.

[주D-002]용도(龍韜) : 주(周) 나라 강태공(姜太公)이 지은 병법(兵法). 육도(六韜) 중의 한 편(篇)이다.[六韜 : 文ㆍ武ㆍ虎ㆍ豹ㆍ龍ㆍ犬]

 

 

 

신유 5월에 집에 들어앉아 일이 없어 두자미의 성도(成都) 초당 시운을 화답한다[辛酉五月端居無事和子美成都草堂詩韻]

이규보(李奎報) 주:원래 5수 연작인데 청구풍아에는 마지막 수만 등재.

옛부터 통달한 선비는 기미를 앎이 귀하다는데 / 古來達士貴知微

전원이 거칠어 가니 어느 날에 돌아가리 / 田園將蕪何日歸

주렁주렁 처렁처렁 묻지를 마소 / 莫問纍纍兼若若

시를 시타 않거니 비를 비타 하올까 / 不曾是是況非非

수레에서 떨어질 때 취한 사람 온전하고 / 墮車醉者只全酒

독을 안은 장인이 무슨 기틀 있으리 / 抱甕丈人寧有機

장자와 열자가 다시 살아 올 수 있다면 / 禦寇南華如可作

내 한번 옷을 걷고서 도를 물어 보려네 / 吾將問道一摳衣

[주C-001]신유5월(辛酉五月) : 고려 신종(神宗) 4년 전주 사록(全州司錄)으로부터 개경(開京)에 돌아와 벼슬 없이 집에 있을 때이다.

[주D-009]전원(田園)이 거칠어 가니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첫구.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거칠어 가려니 어찌 안 돌아가리[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주D-010]주렁주렁 …… 마소 : 한서(漢書)에, “인(印)이 어찌 그리 주렁주렁하며, 인끈이 어찌 그리 처렁처렁한고.” 라는 말이 있다.

[주D-011]수레에서 …… 온전하고 : 술에 취한 사람이 수레에서 떨어져도 상하지 않는 것은 천진(天眞)이 온전한 때문이다.

[주D-012]독[甓]을 안은 장인(丈人) : 자공(子貢)이 한음(漢陰)을 지나다 보니, 한 노인[丈人]이 독을 들고 물을 운반하여 언덕에 오르내리며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자공이 그에게 말하기를, “두릿대[桔橰]를 만들어 물을 푸면 수월하고 일이 쉬울 터인데, 왜 이다지 독을 안고 수고하십니까.”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기계(機械)를 쓰는 자가 기사(機事)가 있고, 기사가 있으면 기심(機心)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계를 쓰지 않는다.” 하였다.

[주D-013]열자(列子) : 전국 때 정(鄭) 나라 사람으로 열자(列子)란 책을 지어 노장(老莊)의 설을 부연(敷衍)하였다.

[주D-014]내 한번 옷을 걷고서 : 옷의 앞치마를 들어올림. 스승 앞에 앉는 예절.

 

 

 

두문(杜門)

이규보(李奎報)

인간의 비방과 의논을 피하려고 / 爲避人間謗議騰

문 닫고 누웠으니 머리가 덥수룩 / 杜門高臥髮鬅鬙

처음엔 마음 설렌 봄처녀 같더니 / 初如蕩蕩懷春女

차츰 고요한 여름 참선하는 중이 되네 / 漸作寥寥結夏僧

애들이 장난으로 옷을 당기니, 어와, 두리둥둥 / 兒戲牽衣聊足樂

손님 와 문을 두드려도 들은 둥 만 둥 / 客來敲戶不須應

궁통과 영욕이 모두 하늘이 명하는 것 / 窮通榮辱皆天賦

메추리 암만 작아도 대붕이 부럽잖네 / 斥鷃何曾羨大鵬

[주D-001]메추리 암만 …… 부럽잖네 : 붕새는 9만 리를 솟아 올라 북명(北冥)에서 남명(南冥)으로 훨훨 날아가는데, 메추리가 가지와 가지 사이로 팔짝팔짝 날며 하는 말, “저 붕새는 뭘 하러 9만 리씩 남쪽으로 가는고.” 《장자》

 

 

 

중유 북산(重遊北山)

이규보(李奎報)

이럭저럭 해가 자주 바뀌는데 / 俯仰頻驚歲屢更

십 년 동안 나는 그대로 서생의 신세 / 十年猶是一書生

우연히 옛 절에 와 유적을 찾아보고 / 偶來古寺尋遺迹

고승을 대하여서 옛정을 얘기하네 / 却對高僧話舊情

벽에 비치는 석양은 날새가 지나는 듯 / 半壁夕陽飛鳥影

산 가득 가을달에 싸늘한 원숭이 울음 / 滿山秋月冷猿聲

울적한 회포를 풀 길이 바이 없어 / 幽懷一鬱殊難寫

이따금 뜰에 내려서 혼자 거닐어 보네 / 時下中庭獨步行

 

 

 

늙은 장수

이규보

당년에는 송골매처럼 몸을 날려 / 當年身似鶻飛揚

동북 지방의 여러 싸움터를 누볐었는데 / 東北曾馳百戰場

눈 개면 화살이 날아오는가 착각하고 / 雪霽錯應看箭影

날 흐리면 이따금 칼 맞은 상처 쑤신다오 / 天陰時復發金瘡

조각한 활은 뱀이 숨은 듯 방안에 걸어두고 / 彫弓蛇蟄堂中掛

시퍼런 칼은 용이 서린 듯 칼집에 넣어두네 / 白刃龍蟠匣裏藏

국가에 보답하려는 장한 마음 길이 늠름하여 / 報國壯心長凜凜

꿈에서도 활을 쏘아 오랑캐의 두목 맞추노라 / 夢中鳴鏑射戎王

 

 

 

중추 우후(中秋雨後)

진화(陳澕)

먹장 구름 쳐다보며 마음 오래 울적터니 / 仰看濃墨久含情

문득 서늘바람이 사면에서 불어 오네 / 忽喜涼風四面生

은빛 대줄기는 구름발 따라 걷어 가고 / 銀竹已隨雲脚捲

둥그런 옥소반이 이슬과 함께 해맑구나 / 玉盤還共露華淸

놀이꾼들은 헤지려다 거듭 술을 가져오라고 / 遊人欲散重呼酒

기생들은 서로 불러 다시 피리를 부는구나 / 倡妓相招更按笙

하늘의 물바가지로 말끔히 벽공을 씻었으니 / 應爲天瓢洗空碧

휘영청 밝은 그 빛이 여느 밤과 영 다르네 / 孤光全勝別宵明

[주D-001]은빛 대줄기[銀竹] : 내리는 소나기의 비유. “하얀 비가 찬 산에 비치니, 쭉쭉 은대와 같구나[白雨映寒山森森如銀竹].”《李白》

[주D-002]둥그런 옥소반[玉盤] : “어렸을 적에 달을 몰라서 흰 옥소반이라 불렀네[少時不識月呼作白玉盤].”《이백(李白)》

 

 

 

상춘정 옥예화(賞春亭玉蘂花)

진화(陳澕) 주:원래2수중 둘째수

복숭아ㆍ오얏꽃 따라 고움 다투기 싫어서 / 懶隨桃李鬪嬌饒

소박한 맵시로 적막히 시름을 띠고 있네 / 素艶閑愁鎖寂寥

괵국부인은 워낙 분대를 싫어하지 / 虢國夫人嫌粉黛

한고의 선녀가 옥을 차고 거니는 듯 / 漢皐仙子佩瓊瑤

담 옆의 생긴 그림자는 바람에 한들한들 / 半墻疎影風前亞

코를 찌르는 밝은 향내가 비 온 뒤에 나풀나풀 / 掠鼻淸香雨後飄

옥 난간 열두 굽이에 봄이 늦으려 하니 / 十二玉欄春欲暮

화공아, 어서 그려라 교초(교인(鮫人)이 짠 집) 위에 / 急須摹取上鮫綃

[주D-001]괵국부인(虢國夫人) : 당(唐) 나라 양귀비(楊貴妃)의 언니인데, 얼굴이 고와서 분(粉)을 바르지 않았다.

[주D-002]한고(漢皐)의 …… 옥을 차고 : “정교보(鄭交甫)가 남으로 놀새 저 한고대(漢皐臺) 밑에 올라 두 여자를 만나니 옥을 차고 있었다. 교보가 눈짓하여 정을 돋우니, 두 여자가 찬 것을 풀어 주었다.” 《漢詩外傳》 한고(漢皐)는 산 이름. 호북성(胡北省) 서북.

 

 

 

경도(京都)

진화(陳澕)

가랑비가 아침 동안 털처럼 부슬부슬 내리더니 / 小雨朝來捲細毛

아침 해가 강물결에 불그레 솟네 / 浴江初日暈紅濤

성 안의 즐비한 집들은 고기 비늘을 겹쳐 놓은 듯 / 千門撲地魚鱗錯

하늘에 치솟은 쌍궐은 독수리 날개 드높아라 / 雙闕攙天鷙翼高

오원의 비단옷들은 풀 싸움이 한창이요 / 吳苑裌衣晴鬪草

한궁의 신선 소매는 취하여 복숭아를 나눈다 / 漢宮仙袂醉分桃

황송해라, 이 몸도 금규에 모시어서 / 多慙每忝金閨侍

맑은 향 담뿍 지닌 채 용포를 받드나니 / 與倚淸香捧赭袍

[주D-001]금규(金閨) : 한(漢) 나라 금마문(金馬門)의 별칭인데, 후세의 한림원(翰林院)을 칭한다.

 

 

 

홍수(紅樹)

이장용(李藏用)

이크, 잎새 하나 밤에 떨어지는 소리 / 一葉初驚落夜聲

서리 아침에 온 수풀이 문득 변했구나 / 千林忽變向霜晴

푸른 산빛을 비추어 그림자를 부수고 / 最憐照破靑嵐影

어느덧 흰 머리를 재촉하여 나게 하네 / 不覺催生白髮莖

황폐한 동산을 바라보니 가을 생각 괴롭고야 / 廢苑瞞盱秋思苦

먼 산엔 눈에 번쩍 석양이 더 밝아라 / 遙山唐突夕陽明

문득 회상되는 건, 작년 이날 연연 길에 / 去年今日燕然路

병풍 같은 산중으로 가던 일 / 記得屏風嶂裏行

[주D-001]연연(燕然) : 산 이름. 후한(後漢) 영평(永平) 원년(元年)에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를 격파하고 이 산에 올라 비석을 새겨 공을 기록하고 돌아왔다.《後漢書》 지금의 몽고이다.

 

 

 

보현원(普賢院)

석혜문(釋惠文)

향로 연기 자욱한 속에 범음이 울리는데 / 爐火煙中演梵音

깊숙한 방이 고요하니 상서로운 흰 기운나누나 / 寂寥生白室沈沈

문밖 뻗은 길엔 남으로 북으로 가는 사람 / 路長門外人南北

바윗가 늙은 솔엔 예나 이제나 달이로세 / 松老巖邊月古今

빈 원 새벽 바람에 풍경소리 울리고 / 空院曉風饒釋舌

작은 뜰 가을 이슬에 파초가 이울었네 / 小庭秋露敗蕉心

내가 와서 고승과 한 자리에서 / 我來寄傲高僧榻

하룻밤 맑은 담론 값이 만금이로세 / 一夜淸談直萬金

 

 

 

유가사(瑜伽寺)

김지대(金之岱)

안개와 노을이 고요한 속에 자리잡은 절 / 寺在煙霞無事中

산엔 푸른빛이 점점이 들어 한창 무르익고 / 亂山滴翠秋光濃

구름 새에 가파른 길이 6, 7리나 뻗었는데 / 雲間絶磴六七里

하늘 끝의 먼 봉은 천 겹인가, 만 겹인가 / 天末遙岑千萬重

차 들고 나면 솔처마에 초승달 걸려 있고 / 茶罷松簷掛微月

설법이 끝나자 서늘한 탑에 종소리 울려오네 / 講闌風榻搖殘鐘

나 같은 벼슬꾼을 시냇물이 응당 웃으렷다 / 溪流應笑玉腰客

홍진의 때를 씻으려도 못 씻으니 / 欲洗未洗紅塵蹤

 

 

 

북경로상(北京路上)

박항(朴恒)

가는 곳마다 똑같은 무연한 벌판에 / 一色平蕪觸處同

사철 어느 때나 광풍이 불어오네 / 四時無日不狂風

얕은 산 대낮에도 난데없는 소낙비 / 淺山白日能飛雨

낡은 변새 황사장에 문득 뻗치는 무지개 / 古塞黃沙忽放虹

4천 리 격한 땅 하늘처럼 머나 멀고 / 地隔四千天共遠

쌍으로 외톨로 서 있는 장승, 길은 끝이 없어라 / 堠磨雙隻路何窮

한토가 좋다마는 내 고장이 아니거니 / 漢家信美非吾土

때때로 돌아갈 꿈이 해동으로 향하네 / 歸夢時時落海東

 

 

 

금주(金州)에서 유안부(劉按部)가 생선을 선사함을 사례하며[在金州謝劉按部顥惠年魚]

오한경(吳漢卿)

누가 파신을 보내어 이 냉관(교관(敎官))을 위로하는가 / 誰遣波臣慰冷官

문득 보니 붉은 지느러미가 은반에 퍼덕이네 / 忽驚紅鬣動銀盤

아전들이 달려와 사또님의 선물 왔다고 / 吏人走報星軺餉

어린애들은 다투어 편지를 찾아보네 / 稚子爭尋尺素看

삶은 국에 밥을 말기 감히 사양하랴 / 烹處敢辭鬵自漑

먹고 나니 칼을 타던 일 우스워라 / 食餘聊笑鋏曾彈

평생에 구복의 계책 서투른 나 / 平生口腹吾謀拙

고마운 공의 덕분에 흠뻑 한 번 먹었네 / 多感公恩快一飡

[주D-001]파신(波臣) : 물고기. 장자(莊子)에, “붕어가 말하기를, 나는 동해(東海)의 파신(波臣)입니다.” 하였다.

[주D-002]칼을 타던 일[彈] : 전국(戰國) 때 제(齊) 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 풍환(馮驩)이 제 빈궁한 신세를 탄식하며, 검(劍)의 손잡이[鋏]를 타면서 노래하기를, “긴 칼아, 돌아갈지로다. 밥먹을 제 생선도 없네.”라고 하였다.

 

 

 

주상께서 태부 심양왕으로 제수하며[主上除太傅瀋陽王]

백원항(白元恒)

옥조가 벽루문에서 내리시와 / 玉詔傳從碧縷門

새로 태부로 제수하사 동녘 번방을 삼으셨도다 / 新除太傅作東藩

천 년만에 임금을 만나 산하로 맹세하고 / 千年遇主山河誓

삼 대째 근왕하여 우로의 은혜 받도다 / 三葉勤王雨露恩

토군의 뽕과 삼이 나라강토 보태주고 / 兔郡桑麻添國界

학성의 꽃과 달이 궁원으로 들어오네 / 鶴城花月入宮園

하객을 맞으시느라 날마다 바쁘신데 / 日迎賀客身無暇

또 부름 받자오시와 지존께 알현하시네 / 又被呼來謁至尊

[주C-001]주상(主上) : 충선왕(忠宣王). 충렬왕(忠烈王) 34년(1308) 5월에 전왕(前王)으로서 원(元) 무종(武宗) 정책(定策)의 공으로 심양왕에 봉해졌다.

[주D-001]천 년 만에 …… 맹세하고 : 천 년 만에 한 번이나 만날 수 있는 성군(聖君). 즉 여기서는 심양왕(瀋陽王)이 원나라 황제의 은덕을 입었다는 말이고,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에게 땅을 봉해 줄 때에 그 맹세하는 글에, “황하수(黃河水)가 줄어서 띠만큼 좁아지고 태산이 달아서 숫돌만큼 되도록 영원히 나라를 지켜 자손에까지 전하자.” 하였다.

[주D-002]근왕(勤王) : 왕사(王事)에 근로(勤勞)하였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심양왕이 원라에 공이 있다는 말이다.

[주D-003]우로(雨露) : 초목(草木)이 비와 이슬을 맞고 자라는 것과 같은 은혜다.

 

 

 

호구사(虎丘寺)

이제현(李齊賢)

합려성 밖에 옛 절이 있는데 / 闔閭城外古禪林

생공당 앞에는 나무가 우거졌구나 / 生公堂前樹陰陰

두 번째 오니 삼생의 꿈 같고 / 重遊髣髴三生夢

사방을 바라보니 만 리 같은 마음 아득하다 / 四顧微茫萬里心

산 위에 달 오르니 누각 그림자 겹치고 / 樓閣影重山月上

돌샘 깊으니 소리 멀리 들린다 / 轆轤聲遠石泉深

가마 타고 강마을로 돌아가니 / 藍輿歸去江村路

종소리가 구름 속에서 울려 나온다 / 雲際猶聞鐘磬音

 

 

 

여울로 거슬러 올라가다(上灘)

이제현(李齊賢)

강물 따라 동으로 내려 갔다가 또 되돌아 올라오니 / 乘流東去泝流還

떠도는 나그네 언제나 조금 편안하리 / 客寢何時得小安

물이 줄고 모래가 쌓인 데는 한푼 정도도 무겁고 / 水落沙堆銖亦重

언덕 무너지고 바위 드러날 때는 한치 거리도 어렵네 / 崖崩石出寸猶難

비오는 소리에 얼마든지 잠자는 것도 해롭지 않고 / 不妨聽雨留連睡

좋은 산 만나서 자세히 보는 일도 기쁘긴 하지만 / 旦喜逢山子細看

다만 이 큰 배를 이끄는 저 뱃사공이 / 只媿郵人牽百丈

종일토록 땀흘리면서 애쓰는 것이 부끄럽네 / 汗流終日走江干

 

 

 

바다를 바라보면서 (望海)

이제현(李齊賢)

물을 보려면 물결부터 봐야 한다했는데 / 早聞觀水在觀瀾

대롱 같은 소견으로 넓은 바다 헤아릴 수 있으랴 / 測管洪溟得一班

밝은 해는 호흡하는 속에 탄자가 뛰는 듯하고 / 白日丸跳呼吸裏

푸른 하늘은 격양하는 사이에 바퀴처럼 도는구나 / 靑天轂轉激揚間

붕익 따라 몇천 리 못 솟아 오르면 / 不隨鵬翼搏千里

오두로 오산 인 것을 누가 볼건가 / 誰見鰲頭冠五山

애석하다 조그마한 저 정위조는 / 可惜區區精衛鳥

한평생을 돌 물어나르는 일 어려운 줄 모른다네 / 一生銜石不如難

[주D-001]물을 …… 봐야 한다 : 《孟子》 盡心上에 “물을 보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출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 한 데서 온 말로, 즉 도(道)의 근본이 있다는 뜻.

[주D-002]붕익(鵬翼) : 붕새의 날개. 곧 아주 먼 길을 난다는 비유이다.《莊子》 逍遙遊에 “붕새가 날개를 치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은데,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 타고 9만 리나 날아 올라간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오두(鰲頭)로 …… 인 것 : 오두는 큰 바다자라의 머리라는 뜻으로, 바다자라가 오산(五山)을 머리로 이고 있다는 고사.《列子》 湯問에 “발해(渤海)의 동쪽에 큰 바다가 있고, 그 바다 가운데 오산이 있다. 오산은 밑둥이 어디에 연결된 곳이 없어 항상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왔다갔다하므로 임금이 큰 바다자라 15마리를 시켜 이 산을 이게 하니, 오산이 비로소 우뚝 서있었다.” 하였다.

[주D-004]정위조(精衛鳥)는 …… 모른다네 : 옛날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딸이 동해(東海)에 빠져 죽은 뒤 새로 화하였는데 이 새를 정위조라 한다. 이 새가 항상 서산(西山)에 가서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웠다는 고사이다.《山海經》 《太平御覽》사람의 무모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감회(感懷)

이제현(李齊賢) 원래3수 중 둘째 수

반세에 조충 공부 장부로서 부끄럽더니 / 半世雕蟲恥壯夫

중년에 말을 타 먼 길에 지쳤소이다 / 中年跨馬倦征途

희미한 등불 밑에 배반이 초초하고 / 杯盤草草燈花落

외로운 새벽달 아래 관새가 멀고 머네 / 關塞迢迢曉月孤

화표의 학은 천 년 만에도 아직 안 돌아왔네 / 華表未歸千載鶴

상림 까마귀에게 누가 한 가지 빌려줄까 / 上林誰借一枝烏

돈 있으면 술 사 마시고 불평한 속을 씻으리니 / 有錢徑買澆腸酒

구태여 시를 지어 머리 희어 무엇하리 / 莫使詩班入鬢鬚

[주D-002]조충(雕蟲) : 좀 글공부[雕蟲)]는 벌레를 아로새기는 것 같은 조그만 재주, 즉 사부(詞賦)와 같은 말예(末藝).

[주D-003]상림(上林) 까마귀에게 …… 빌려줄까 : 당(唐) 이의보(李義父)가 임금 앞에 불려 나가 뵈옵는데, 태종(太宗)이, “‘까마귀’를 두고 시를 지으라.” 하니 그가 읊되, 끝 구에, “상림(上林) 엔 나무도 많건만, 깃들일 한 가지도 안 빌려주는구나.” 하니, 태종이 말하기를, “장차 온 나뭇가지를 네게 빌려주리니 어찌 다만 한 가지뿐이랴.” 하였다. 뒤에 등용되어 벼슬이 상위(相位)에 올랐다.

 

 

 

촉에서 연으로 돌아가는 노상에서[路上 自蜀歸燕]

이제현(李齊賢)

말 위에서 촉도난(비파 곡조 이름)을 읊으며 / 馬上行吟蜀道難

이 아침에 비로소 또 진관에 드네 / 今朝始復入秦關

날 저문데 푸른 구름은 어부수를 격했고 / 碧雲暮隔魚鳧水

가을철 단풍은 조서산에 이었네 / 紅樹秋連鳥鼠山

문자는 천고의 한을 더하고 / 文字剩添千古恨

명리에서 일신의 한가함을 뉘 얻었던고 / 利名誰博一身閑

아아, 몹시도 그립구나, 저 안화사(경치가 좋다 한다) 앞길 / 令人最憶安和路

멋대로 죽장망해로 오가던것 / 竹杖芒鞋自往還

[주D-001]촉도난(蜀道難) : 이백(李白)이 촉도(蜀道)의 험함을 읊은 시.

 

 

 

고정산(高亭山)

이제현(李齊賢)

강녘의 산들은 아미를 엷게 단장한 듯 / 江上山如淡掃眉

인가 울타리엔 무궁화가 곳곳에 피었네 / 人家處處槿花籬

배 멈추고 송림 속의 절 어딘지 묻다가 / 停舟欲問松間寺

지팡이 짚고 대 아래 못 먼저 엿보네 / 策杖先窺竹下池

돛 그림자는 황혼에 멀리 초원을 이었고 / 帆影暮連芳草遠

종소리는 새벽에 천천히 구름에서 나오누나 / 鍾聲曉出白雲遲

난간에서 바라보니 삼오가 손바닥만 / 憑欄一望三吳小

장군이 말 세웠던 때를 상상하여 보노라 / 像想將軍立馬時

[주C-001]고정산(高亭山) : “백운(伯韻) 승상(丞相)이 군사를 주둔했던 곳.”이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다경루에서 눈온 뒤에[多景樓雪後]

이제현(李齊賢)

높은 다락에 오르니 공중에 가득한 눈이 반갑더니 / 樓高正喜雪漫空

갠 뒤에 바라보니 더 한층 기관일세 / 晴後奇觀更不同

만 리 하늘은 은세계를 둘렀고 / 萬里天圍銀色界

육조의 산들은 수정궁을 안았네 / 六朝山擁水精宮

창해에 솟는 햇빛은 거나한 눈을 흔들고 / 光搖醉眼滄溟日

초목 휩쓰는 바람이 시 짓는 창자에 스며드네 / 淸透詩腸草木風

우스워라, 구구이 무슨 일에 골몰하여 / 却笑區區何事業

10년간 번잡한 거리 땀 흘리며 다녔나 / 十年揮汗九街中

 

 

 

황토점에서 상왕(上王 忠宣王)이 참소를 입어 해명하지 못하심을 듣고[黃土店 聞上見譖不能自明]

이제현(李齊賢)

쓱쓱 공중에 글을 쓰며 시름하고 앉았노니 / 咄咄書空但坐愁

고생하시는 우리 임 어디 가 몸 쉬시리 / 式微何處是菟裘

10 년 동안 가진 고난은 천 리를 올라온 고기 / 十年艱險魚千里

만고의 흥망 역사는 한 언덕의 담비 / 萬古升沈貉一兵

해는 서로 달려가니 혼이 끊어지고 / 白日西飛魂正斷

강물은 동으로 흘러가니 눈물 먼저 흐르누나 / 碧江東注淚先流

수많은 문객들 중 닭 소리 개 도적도 없는가 / 滿門簪履無鷄狗

은덕 입은 나같은 자는 죽어도 면목 없네 / 飽德如吾死合羞

[주D-002]고생하시는[式微] : 《시경》의 〈식미(式微)편〉은 임금이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 가서 살면서 고생하는 것을 읊은 시다.

[주D-003]한 언덕의 담비 : 한(漢) 나라 양휘(楊揮)의 말에, “예와 이제가 한 언덕의 담비와 같다.” 하였으니, 동류(同類)란 말이다.

[주D-004]수많은 문객(門客)들 …… 개 도적 : 전국(戰國) 시대 때 제(齊) 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秦)에 들어가니 진 소왕(昭王)이 가두어 죽이려 했다. 맹상군의 문객 중에 개도둑질 잘하는 자가 있어 흰 여우 갖옷[狐白裘]을 훔쳐 왕의 총희(寵姬)에게 바쳐서 그곳을 벗어나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는데 관문이 닫혀있었다. 그러자 객 중에 닭의 울음을 잘 흉내내는 자가 있어 닭울음 소리를 내니 뭇 닭이 다 울어 관문이 열고 드디어 탈출했다.

 

 

 

달존(達尊)의 행화운(杏花韻)

이제현(李齊賢)

봄빛을 머금은 조그마한 마을 서녁에 / 淡佇春光小巷西

말없이 담장에 기대어 긴 제방 굽어보네 / 倚墻無語俯長堤

붉은 밀로 장식한 꽃받침 바람에 꺾이고 / 帶裝絳蠟風吹折

단사 같은 꽃심 비 맞아 납작해졌네 / 花簇丹砂雨壓低

놀랍게도 미인의 금으로 만든 한발에 떨어지고 / 驚墮佳人金捍撥

공교롭게 말의 비단 장니를 붙였네 / 巧黏游騎錦障泥

녹음에 푸른 열매 부질없이 슬퍼하리니 / 綠陰靑子空惆悵

마음껏 향기 찾아 떠나지 마오 / 滿意尋芳草解携

[주D-002]놀랍게도 …… 붙였네 : 한발(捍撥)은 비파(琵琶) 채의 끝에 장식한 금은을 말하며, 장니(障泥)는 말[馬]의 배를 덮어 흙이 튀어오르지 못하게 하는 도구이다.

 

 

 

칠석에 조금 마시며[七夕小酌]

이곡(李穀)

평생에 발자취 뜬구름 같았는데 / 平生足迹等雲浮

만 리 밖에 서로 만남도 인연이 있네그려 / 萬里相逢信有由

하늘 위의 풍류는 견우직녀 만나는 날 / 天上風流牛女夕

인간에도 아름답고 번화한 서울에서 / 人間佳麗帝王州

푸짐한 담소에 술이 바다 같구먼 / 笑談款款尊如海

깊숙한 주렴 장막에 비가 가을을 보내오네 / 簾幕深深雨送秋

걸교와 옷 말림[曙]은 내 할 일 아니로세 / 乞巧曝衣非我事

한두 구 시나 지어서 풋시름을 잊으려네 / 且憑詩句遣閑愁

[주D-001]걸교(乞巧)와 옷 말림[曙] : 걸교는 칠석날 부녀자들이 색실을 맺어 놓고 일곱 바늘에 꿰어 바느질 잘하게 되는 솜씨를 비는 것인데, 거미가 외[瓜] 위에 그물을 치면 성공한 것이라 한다. 옷 말림은 칠석에 옷을 내어 뜰앞에서 말리는 것인데 진(晉) 나라 이래의 옛 풍습. 부귀한 집에서 능과 비단옷을 내어 말림에 대항하여 완함(阮咸)이 긴 장대 끝에 고쟁이[犢鼻禪]을 꿰어 말렸음은 유명한 고사이다.《荊楚歲時記》

 

 

 

무진년(1328, 충숙왕15) 겨울에 얼어붙은 한강(漢江)을 건너며 (氷渡漢江)

이곡(李穀)

모래 언덕 여인숙 정말 을씨년스럽기에 / 沙頭逆旅正蕭條

빈 처마에 들러붙어 북두성 자루만 쳐다봤네 / 幾傍虛簷望斗杓

한밤중 질풍이 불어와 지붕을 날릴 듯하더니 / 半夜疾風吹破屋

강물이 외길로 얼어붙어 다리처럼 되었어라 / 一江流水凍成橋

짧은 시간에 알겠노니 사람이 얼마나 소심한지 / 須臾便見人心小

얇은 얼음 위에서 힘센 말 자랑은 그만둘 일 / 尋丈休誇馬足驕

건너온 뒤 후유 하며 혼자 쓴웃음 짓나니 / 過了畏途還自笑

고향에 돌아가 민초로 늙는 것이 더 낫겠네 / 不如歸去老漁樵

 

 

 

계미원일 숭천문 아래에서(癸未元日崇天門下)

이곡(李穀)

설날 아침 대명궁을 활짝 열어놓으니 / 正朝大闢大明宮

만국의 의관이 예로 다들 모이네 / 萬國衣冠此會同

호랑이ㆍ표범 문을 지켜 안팎이 엄숙하고 / 虎豹守閽嚴內外

봉새ㆍ난새 서반을 갈라 동ㆍ서가 엄연하네 / 鴛鸞分序肅西東

헌수 잔에 둥실 봄빛이 떠오르고 / 壽觴灔灔浮春色

시위들이 겹겹이 새벽 바람에 서있네 / 仙仗摐摐立曉風

나도 일찍 조복 입고 홀 들고 반열에 섰었더니 / 袍笏昔曾陪俊彦

천문에 머리 돌리매 그지없는 옛 생각 / 天門翹首思難窮

 

 

 

병중에 회포를 읊다 (病中述懷)

이곡(李穀) 6수중 다섯 번째

그림자 짝하며 떠돈 것은 단지 이 몸 하나 / 伴影羈遊只此身

지금 또 서울 먼지로 새까맣게 변한 흰옷 / 素衣今復化京塵

구름을 쳐다보며 날마다 고조에 부끄럽고 / 望雲日日慙高鳥

달을 대하며 때때로 옛 친구를 떠올리네 / 對月時時憶故人

까치 소리 늘 들어도 기쁜 소식은 없다마는 / 慣聽鵲鳴虛報喜

자벌레 몸 굽힘이 펴려고 함인 줄 누가 알랴 / 誰知蠖屈是求伸

동쪽 하늘 삼천 리 그 너머 고향 산천 / 故山東望三千里

내일쯤엔 매화 피어 봄소식 또 전하련만 / 明日梅花又一春

[주D-010]지금……흰옷 :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시에 “집 떠나 멀리 나와 노니는 생활, 유유하여라 삼천 리 머나먼 길이로세. 서울에는 바람과 먼지가 어찌 많은지, 흰옷이 금방 새카맣게 변하누나.〔謝家遠行游 悠悠三千里 京洛多風塵 素衣化爲緇〕”라는 표현이 있다. 《文選 卷24 爲顧彦先贈婦二首》

[주D-011]구름을……부끄럽고 : 하늘 높이 떠서 구름 사이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꼼짝 못하고 있는 자신의 옹색한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참고로 도잠(陶潛)의 시에 “구름을 쳐다보면 높이 나는 새 보기 부끄럽고, 물을 굽어보면 노니는 물고기 보기 계면쩍다.〔望雲慚高鳥 臨水愧游魚〕”라는 말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3 始作鎭軍參軍經曲阿作》

[주D-012]자벌레……알랴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몸을 굽혀 움츠리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숨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라는 말이 나온다.

 

 

 

정조설(正朝雪)

이곡(李穀)

제야에 내린 눈이 설날 아침까지 이르러 / 雪從除夜到正朝

불어오는 새 봄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녹는구나 / 旋入春風不禁消

쌍궐의 의장은 그림자도 희미한데 / 扇影未分雙闕仗

오문 다리엔 가죽신 소리 벌써 들리네 / 靴聲早集五門橋

늘어선 하정 반열의 조회에 옷이야 젖어도 / 從敎賀列朝衣濕

춤추는 궁인들의 소매에 어울리리 / 好傍昭容舞䄂飄

금년 새해엔 진작 서기 많사오니 / 便是新年多瑞氣

초주(초백주(椒柏酒))를 가득 드리며 민요 함께 바치과저 / 願隨椒酒進民謠

 

 

 

어느 사람에게 주다[有贈]

민사평(閔思平)

집으로 돌아온 지 몇 해째 나날이 한가해도 / 就第年來日日閑

벼슬 바다에 물결 센 것 아직도 놀라네 / 尙驚宦海足波瀾

고기를 낚으려 고요히 울 옆 돌에 앉고 / 釣魚靜坐籬邊石

날 개면 고사리 캐러 집 뒷산에 오르네 / 採蕨晴登屋上山

이따금 시골 중이 와서 글자를 묻기도 하며 / 時有野僧來問字

시내벗과 어울려 같이 즐기기도 하고 / 不妨溪友與同歡

부끄럽네 나는 풍진의 관리가 아니건만 / 愧予非是風塵吏

어쩌다 그대 따라 소매 떨치고 못 돌아가나 / 猶未隨君拂袖還

 

 

 

계림군공 왕정승 후 만사(鷄林君公王政丞 煦 挽詞)

안진(安震)

정촛날 나무 고드름이 어찌 우연했으리 / 正朝木稼豈徒哉

고관을 위하여 재난을 예고하였네 / 應爲高官報有災

초초히 요동 들에서 관을 닫다니 / 草草蓋棺遼野遠

당당한 나라의 기둥, 태산이 무너졌구나 / 堂堂柱國泰山頹

주문 저문 날에 집집이 구슬퍼하고 / 朱門日迫千家慘

명정이 펄럭이니 바람도 설워하네 / 丹旐風生萬壑衰

덕능(충선왕(忠宣王)의 능. 개성(開城)에 있다) 산밑 길에 머리를 돌려보니 / 回首德陵山下路

푸른 구름 가을빛이 드높이 잠겨 있네 / 碧雲秋色鎖崔嵬

[주D-001]안진(安震) :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佔畢齋集)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작가가 방서(方曙)로 되어 있다.

[주D-002]고드름 : 예로부터 나무에 고드름이 열면 현인(賢人)이나 고관(高官)에게 재앙이 있다 한다.

[주D-003]당당한 나라의 …… 무너졌구나 : 공자가 돌아가기 전 7일 아침에 불렀다는 노래. “태산이 무너지려는가, 대들보가 부러지려는가, 철인이 이울려는가[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禮 檀弓》

 

 

 

복주(福州)에서 친구의 시를 차운하며[福州次友人韻]

정포(鄭誧)

쓸쓸한 여관에 할 일이 통 없어 / 施館荒涼一事無

창 앞에서 온종일 중처럼 앉아 있네 / 小窓終日學僧趺

총총히 가는 세월은 노니는 나그넬 속이고 / 流光冉冉欺遊子

분분한 세상 일은 썩은 선비 곤하게 하네 / 世故紛紛因腐儒

신선이 학되는 것을 누가 보았나 / 誰見仙人曾化鶴

늙은 말이 되려 망아지 된줄 스스로 아네 / 自知老馬反爲駒

그대를 좇아 강변에 집을 짓고 살려네 / 從君結屋淸江上

만년의 갈매기 맹세 내 어찌 저버리리 / 晩歲鷗盟豈可渝

[주D-001]갈매기 맹세[鷗盟] : 강호(江湖)에 같이 놀자고 갈매기와 맹세한 것.

 

 

 

증 이천각 달존(贈李天覺達尊)

정포(鄭誧)

만사가 때를 따라 알맞음이 다르거니 / 萬事隨時各有宜

제왕 앞에 비파 탐이 어리석지 않으리 / 仕齊操瑟豈非癡

평생에 번쾌 따위와 같이 서기 부끄러워하네 / 平生恥與噲等伍

후세에 반드시 또 양웅 있어 알아주리 / 後世必有楊雄知

따오기를 새기면 안 되어도 비슷하거니와 / 刻鵠不成猶有類

용을 잡기는 능숙한들 어디에다 쓰리 / 屠龍雖妙竟何施

지금엔 유관이 신세를 그르쳤지만 / 如今更信儒冠誤

내 차마 거나한 중에 시를 폐하지 않으리 / 不忍乘酣廢我詩

이즈음 자주 과거를 폐지했다.

[주D-001]제왕(齊王) 앞에 비파 탐이 : 제왕(齊王)이 비파를 싫어하는데, 제 나라에 벼슬하려는 사람이 비파를 가지고 문에 서 있는 지 3년이 되어도 들어가지 못했다. 객이 꾸짖기를, “왕은 피리를 좋아하는데 자네가 비파를 치니, 비파는 잘 쳐도 왕이 싫어함을 어쩌랴.” 하였다.

[주D-002]평생에 …… 부끄러워하네 : 한(漢) 나라 한신(韓信)이 초왕(楚王)으로 봉했다가 무고(誣告)에 의하여 낙양(洛陽)으로 잡혀 와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봉(降封)되었는데, 한 번은 번쾌(樊噲)의 집에 갔다가 문에 나와서, “내가 번쾌의 무리와 동급[同素]이 된단 말인가.” 하였다.

[주D-003]따오기[鵠]를 새기면 : “따오기를 새기[刻]다가 안 되어도 오히려 물오리와는 비슷하려니와, 범을 그리다가 안되면 도리어 개와 비슷하게 되느니라[刻鵠不成尙類鶩 畫虎不成反類狗].”라는 옛말이 있다.

[주D-004]용(龍)을 잡기[屠] : 주평만이 지리익에게 용을 도살하는 법을 배워 3년 만에 재주가 완성되었으나, 그 기교를 쓸 데가 없었다. 재주가 높고도 쓸데 없다는 말. ≪莊子≫

 

 

 

송유사암(送柳思庵)

이인복(李仁復)

인간엔 기름불 스스로 끓이거늘 / 人間膏火自相煎

그대 같은 명철 한 분은 역사에 전할 만하외다 / 明哲如公史可傳

위태로운 시국에 사직을 편안히 하고 / 已向危時安社稷

평지에서 그대로 신선이 되는구나 / 更從平地作神仙

반드시 오호의 푸른 물결 꿈이 벌써 끊어졌고 / 五湖夢斷煙波綠

삼경 깊은 가을에 들국화 곱게 피리 / 三徑秋深野菊鮮

나는 부끄럽네, 벼슬 버리고 못 가는데 / 媿我未能投紱去

요사이 두 귀밑머리에 눈이 나부끼니 / 邇來雙鬢雪飄然

 

 

 

원조 동년에 마언휘 승지 부자통학사에게 편지를 겸하여 부치며[寄元朝同年馬彦翬承旨兼柬傅子通學士]

이인복(李仁復)

몇 번이나 한림원에서 함께 취해 돌아왔었나 / 每向瓊林憶醉歸

따스한 봄날 어사화 꽂고 건들건들 / 賜花春暖影離離

작별한 뒤 두터운 교정을 더욱 느끼네 / 別來更覺交情厚

늙어가니 세상일 내 어이 알리 / 老去安知世事非

노둔한 말이 외양의 콩을 아직도 그리워하네 / 駑鈍尙慙懷棧豆

멀리 나는 붕새가 뱁새가 깃들이는 울타리를 다시 돌아보리 / 鵬飛誰復顧藩籬

그대는 부디 동이가 누하다 웃지 마소 / 請君莫笑東夷陋

바다위 삼산(금강산ㆍ지리산ㆍ한라산)에 푸른 빛 솟아있네 / 海上三山聳翠微

[주D-001]노둔한 말이 …… 그리워하네 : “노둔한 말이 외양의 콩을 그리워하면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晉書》

[주D-002]그대는 부디 …… 웃지 마소 : 공자가 구이(九夷)에 살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되, “누(陋)하리이다.” 공자가 말하되, “군자가 살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하였다.

 

 

 

보문사 서루(普門社西樓)

박효수(朴孝修)

솔 사이로 갈도하며 멀리 스님 찾아오니 / 松間喝道遠尋師

봄도 다해 산꽃이 반이나 떨어졌네 / 春盡山花半在枝

공문서 더미 속에 몸은 절로 늙어도 / 薄領堆邊身自老

운수 그윽한 곳에 꿈은 노상 달렸네 / 水雲鄕裏夢常馳

조선께 매양 마음을 가지고 묻고자 하나 / 祖禪每欲將心問

민생고에 어찌 의원의 손을 떼리 / 民瘼那堪放手醫

와서 놀면서 좋은 경치 시로 쓰기 전에 / 從倚未能題勝景

다락을 내리느라니 속진 도로 감도네 / 俗塵還繞下樓時

[주D-001]갈도(喝道) : 관원이 출입할 때에 벽제(辟除)하는 것을 갈도(喝道)라 하는데, 소나무 사이에 갈도(喝道)하는 것은 당 나라 이의산(李義山)이 열거(列擧)한 몇 가지 살풍경(殺風景)의 하나이다. 그것은 산에 놀러가는 사람은 한가하고 맑은 취미를 찾는 것인데, 관원이 소나무 숲 사이에 벽제(辟除) 소리를 높이 하는 것을 조롱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작자(作者)가 관원이므로, 이런 말을 인용하여 조롱한 것이다.

[주D-002]조선(祖禪)께 …… 묻고자 : 달마조사(達摩祖師)가 소실산(少室山)에 있을 때에 혜가(惠可)가 와서, “마음이 불안하니 편안케 하여 주소서.”하고 물은즉, 달마(達摩)는, “마음을 가져 오너라. 너를 안심시켜주마.[將心來與汝安]” 하였다.

 

 

 

유 자청궁(遊紫淸宮)

석굉연(釋宏演)

홍애(선인의 이름)선생이 옛날 숨어 살던 곳 / 洪崖先生舊所隱

뜰앞에 벽도화꽃 떨어지누나 / 階下碧桃花飄零

밤에도 우물에서 광채나니 단약이 남아있고 / 夜光出井留丹藥

봄 이슬이 솔을 적셔 복령이 생기네 / 春露浥松生茯苓

천녀들은 혹 녹옥장을 들고 있고 / 天女或携綠玉杖

선인은 저마다 황정경(선가의 경전)을 읽고 있네 / 仙人自讀黃庭經

5리도 못 되는 이웃 절로 돌아오니 / 隣寺歸來不五里

연기만 자욱하여라 바라봐도 안 보이네 / 回頭望斷煙冥冥

 

 

 

독두시(讀杜詩)

이색(李穡)

금리 선생이 어찌 가난할쏜가 / 錦里先生豈是貧

두릉 뽕밭ㆍ삼밭에 또 봄이 돌아왔네 / 桑麻杜曲又回春

발 드리우고 환약지으니 몸에 병은 없고 / 鉤簾丸藥身無病

종이에 바둑판 긋고 긴 바늘 두들겨 낚시 만드니 천진도 하구나 / 畫紙敲針意更眞

난리를 우연히 만나 절의를 더할망정 / 偶値亂離增節義

쇠하고 늙었기로 정신이야 덜릴쏜가 / 肯因衰老損精神

고금의 절창을 뉘라서 이으리 / 古今絶唱誰能繼

남은 향기 남은 기름을 후인에게 빌리누나 / 賸馥殘膏丐後人

[주D-001]금리(錦里) 선생이 …… 가난할쏜가 : 금관성(錦官城 현 사천성 성도현(成都縣) 서남). 두보(杜甫)가 거기 살며 자칭 금리선생이라 했다. 그의 시 “금리 선생이 오각건을 쓰고 동산에서 토란과 밤을 거두니 온전히 가난하지는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未全貧]” 라는 시가 있다.

[주D-002]발[簾] 드리우고 …… 병은 없고 : 두보의 시에 발과 약에 관한 구절이 많다.

[주D-003]종이에 …… 천진도 하구나 : 두보의 시에, “늙은 아내는 종이를 그어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 자식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든다.”는 구절이 있다.

[주D-004]남은 향기 …… 빌리누나 : 원미지(元微之)가 두보의 시를 칭찬하며, “남은 기름과 남은 향기가 후세의 시인에게까지 혜택을 준다.” 하였다.

 

 

 

동사생(同舍生)과 함께 짓다. 與同舍同賦

이색(李穡)

객지의 고단한 그림자는 절로 외로웁지만 / 遠遊孤影自零丁

태학의 유생이라 기백은 상기 맹렬한데 / 挾冊橋門氣尙獰

풍채 비범한 그대는 봉황의 자질이요 / 毛羽不凡君鸑鷟

모양 바꾸려는 나는 명령과 흡사하네 / 神形欲變我螟蛉

해마다 푸른 봄풀은 맘을 상하게 하고 / 年年春草傷心碧

밤마다 구름 낀 청산은 꿈에 들어오누나 / 夜夜雲山入夢靑

후일에 잘 봉양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 未識他年榮養否

지금 부모 떠나 있는 게 한스러울 뿐이네 / 只今深恨阻趨庭

[주D-001]명령(螟蛉) : 나방류의 유충(幼蟲)인데, 나나니벌이 이것을 데려다 길러서 제 새끼로 변화시킨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남의 도움으로 인품과 학문이 진취되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주D-002]푸른 …… 하고 : 부모를 몹시 그리워하는 뜻으로, 부모 밑에서 자식이 자라는 것을 따뜻한 봄볕 아래서 풀이 자라는 것에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어머니의 바느질하는 옷은 유자가 입을 옷이로세. 한 치 풀의 마음을 가지고 삼춘의 햇볕에 보답하기 어려워라.[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하였다

 

 

 

新春

이색(李穡)

저자엔 신년하례의 수레들이 떠들썩한데 / 賀歲輪蹄鬧闠闤

궁벽한 집은 적적하여 꿈이 막 쇠잔하여라 / 幽居寂寂夢初殘

새봄이라 강산이 화려해짐을 문득 깨닫고 / 新春覺江山麗

늘그막엔 유독 세월이 한가함을 알겠구나 / 老境偏知日月閑

상판과 조복엔 먼지가 두어 자나 끼었고 / 象版朝衫塵數尺

약 화로와 책 시렁은 세 칸 집에 갖추었네 / 藥爐書架屋三間

앓고 나서도 미친 흥은 완전히 안 사라져 / 病餘狂興全消未

좋은 시구 이룬 때는 희색이 만면하다오 / 好句圓時喜滿顔

 

 

 

척약재 승주래방 음 주중(惕若齋乘舟來訪飮舟中)

한수(韓脩)

여강 안개 비에 조각 배를 띄우고 / 驪江煙雨泛扁舟

뜻대로 물따라 내려가기도 거슬러 올라가기도 / 隨意隨流或泝流

천 점 봉우리는 모두 다 수묵 빛 / 千點岡巒同暗淡

양 옆 꽃나무들 각기 맑고 그윽하구나 / 兩邊花木各淸幽

고기들도 낙을 알아 물에 잠겨 서로 따르고 / 魚因知樂潛相趁

새는 저 안 잡을 줄 알고 가까히 가도 그대로 있네 / 鳥識忘機近尙浮

이 고장에 살고 있는 시선 곧 아니면 / 不有詩仙居此地

이 멋진 그림속 놀음 어찌 하여 보리 / 豈能爲此畫中遊

[주D-001]고기들도 낙(樂)을 알아 :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함께 호량(濠梁)에서 고기[魚]의 노는 것을 구경하다가. “고기들이 즐겁겠구나.” 하니, 혜자는, “자네는 고기가 아닌데 어찌 고기의 즐거운 줄을 아는가.” 하였다.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니면서 어찌 내가 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 줄을 아는가.” 하였다.

 

 

 

우제(偶題) 원래5수 기3

정몽주(鄭夢周

돈피 갖옷이 다 해지도록 뜻을 펴지 못하면서 / 弊盡貂裘志未伸

세 치 혀를 가지고 소진 노릇 부끄럽네 / 羞將寸舌比蘇秦

장건의 떼 위에 하늘은 바다에 이었고 / 張騫査上天連海

서복의 사당 앞에 풀은 절로 봄이로세 / 徐福祠前草自春

시절을 느끼니 눈물이 쉬 나오고 / 眼爲感時垂淚易

나라에 허락한 몸 자주 멀리 노누나 / 身因許國遠遊頻

손수 심었던 고향의 새 버들이 / 故園手種新楊柳

아마도 이 봄 바람에 주인 기다리려니 / 應向春風待主人

[주D-001]돈피 갖옷이 …… 펴지 못하면서 : 전국(戰國) 때 말 잘하는 소진(蘇秦)이 성공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입고 갔던 돈피 갖옷이 다 헤져서 그 너절한 꼴에 아내도 베틀에서 내리지 않았다.

[주D-002]세 치[寸] 혀를 …… 부끄럽네 : 소진(蘇秦)이 육국(六國)을 달래어 연합(聯合)해서 진(秦)에 대항하게 하고 육국의 정승의 상인(相印)을 찼다.

[주D-003]서복(徐福)의 …… 봄이로세 : 진(秦)의 방사(方士). 혹 서시(徐市)라고도 함.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초(不死草)를 구해온다고 진시황(秦始皇)을 달래어 동남동녀(童男童女) 각 3천 명을 거느리고 누선(樓船)을 타고 바다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일행이 일본에 건너가 정주(定住)했다 하며 와까야마[和歌山] 지방에 그 유적과 신사(神祠)가 있었다고 한다.

 

 

 

次李浩然

金九容

百年春夢付南柯。一陣新涼感歲華。風月有期長作伴。乾坤乘興郞爲家。李侯不悟倉中鼠。杜薄猶疑盞疷蛇。從此共成眞隱遁。莫將虛譽向人誇

 

 

 

曳船

金九容

曳船檛鼓泝江間。遙望西川幾萬山。天上何遲靑鳥降。沙頭偏愧白鷗閑。星移物換年將半。裘弊囊空客未還。安得盡看奇勝處。秋風一笑下龍關。

강수(江水) [김구용(金九容)]

강물은 동쪽 가서 돌아오지 않는데 / 江水東流不復回

배 돛은 만리 먼 서쪽 향해 펼쳐졌네 / 雲帆萬里向西開

부들 자란 강언덕에 바람은 살랑 일고 / 菰蒲兩岸微風起

버들 숲 긴 둑에는 부슬부슬 비 내리네 / 楊柳長堤細雨來

기자 나라가 멀어지매 꿈속에서 놀라고 / 驚夢遠迷箕子國

나그네의 시름 속에 초왕대에 오르네 / 旅愁獨上楚王臺

가고 또 가 무산이 가까웠단 말 들으나 / 行行見說巫山近

원숭이의 울음 듣고 되레 슬픔 깨닫누나 / 一聽猿聲轉覺哀

 

 

 

偶成

李達衷

松京渺渺道途賖。流落他鄕鬢易華。到處寧無三宿戀。傷時只有五噫歌。回頭往事渾如許。屈指餘生也不多。一寸丹心猶耿耿。亢然淸坐眄庭柯。

 

 

 

태주로 돌아가는 호약해 조마(胡若海照磨)를 보내며 이수[送胡若海照磨還台州] 二首

원래2수 기1

이존오(李存吾)

남성의 낭관이 이 나라에 사자로 오니 / 南省郞官聘我邦

그 말쑥한 풍채와 거동 누구나 다 탄복하네 / 風儀瀟洒已心降

임금의 극진한 총애는 붉은 활 하나를 내렸고 / 主人寵迫彤弓一

문객의 알뜰한 지우는 흰 구슬 한 쌍 / 門客知深白璧雙

우공 산천은 전쟁이 한창인데 / 禹貢山川猶戰伐

기역의 풍속은 자래로 순박하네 / 箕封民俗自淳厖

가을 바람이 석별의 뜻을 몰라주어 / 秋風不識留君意

탄 배를 곧 바로 불어 절강까지 보내누나 / 直送飛艎到淅江

[주D-001]붉은 활[彤弓] : 동궁(彤弓)은 붉은 활인데, 주(周) 나라 때에 제후(諸侯)가 전공(戰功)이 있으면, 천자(天子)가 동궁을 주는 것이다.

[주D-002]흰 구슬[白璧]한 쌍 : 전국(戰國) 때에 우경(虞卿)이 조왕(趙王)을 보았더니 한 번 보자 조왕이 백벽(白璧) 한 쌍을 주었다.

 

 

 

가야사(伽倻寺) 주지(住持) 노스님의 시를 차운하여 삼수 [次伽倻寺住老詩] 三首

원래3수 기2

유숙(柳淑)

숲 사이에 한가히 열린 녹야당 / 林下閑開綠野堂

산수 좋은 경치 벼와 물고기 마을 / 溪山勝景稻魚鄕

국화는 솔ㆍ대와 함께 세 길을 이뤘고 / 菊將松竹成三逕

거문고ㆍ도서가 모두 한 상에 놓여 있네 / 琴與圖書共一床

사귐이 지ㆍ허를 잇기 바랄 뿐 / 但願交遊繼支許

부귀로 금ㆍ장을 부러워해 무엇하리 / 何須富貴羨金張

우스워라 늦게야 돌아온 옛 사람들 / 古人可笑歸來晩

벼슬길 험한 풍파가 끝간 데를 몰라라 / 宦路風波浩莫量

[주D-001]지(支)ㆍ허(許) : 진(晋) 고승(高僧) 지둔(支遁 자는 도림(道林))과 명사(名士) 허순(許詢 자는 현도(玄度))인데, 이 두 사람이 깊이 사귀었다.

[주D-002]금(金)ㆍ장(張) : 한(漢) 선제(宣帝) 때의 고관이었던 김일제(金日磾)와 장안세(張安世)인데 부귀한 가문이다.

 

 

 

寄贈岩遁

鄭樞

繞屋扶疏綠樹煙。幽齋不語對山川。百年耐友唯岩遁。千苦新詩卽閬仙。有約不來花盡謝。相思未見月重圓。倚欄淸嘯何時聽。回望龍池一悵然。

 

 

 

悼鄭文貞公思道

鄭樞

落落材名動搢紳。溫溫談笑已前身。誦言每覺撑腸雪。念德徒傷有脚春。汗漫相期九陔遠。凄涼唯見一阡新。鄙夫豈是無從涕。少向東床意最親

 

 

 

次韻呈岩遁

鄭樞

海上沙場碎鐵衣。島夷橫槊馬如飛。夜來府牒催征急。霜後菜田收米餙。未得餐麻住蘭若。不堪持釣坐苔磯。隔窓風葉驚殘夢。五夜疏鍾前計非。

 

 

 

선두(船頭)

설손(偰遜)

뱃머리에 물 소리 찰싹찰싹 / 船頭潺潺迸水聲

대 뜸에 우수수 늦바람이 불어오네 / 篷上淅淅晩風生

청산은 용처럼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 靑山如龍入雲去

흰 물결은 꽃을 말아 눈송이를 날리누나 / 白浪捲花飛雪明

해 진 벌판에 기러기 떼는 모여드는데 / 日落平疇群雁集

하늘 가 지친 나그네는 한 몸이 가볍네 / 天涯倦客一身輕

해가 저물어도 고향엔 못 돌아가니 / 故鄕歲晏不歸去

검 잡고 길이 읊으매 그지없는 내 정한 / 拔劍長吟無限情

[주D-001]흰 물결은 꽃 : 물결이 솟구쳐 흰 꽃처럼 되는 것을 낭화(浪花)라 한다.

 

 

 

병중 영 병매(病中詠甁梅) 원래2수 기1

설손(偰遜)

병중에도 신선의 옥같고 눈같은 살을랑 보니 / 病愛仙人玉雪肌

걸음 잘 못 걸어도 〈매화는〉 어디론지 옮겨올 수 있네 / 愁無健步也能移

임포는 마침내 서호의 낙을 누렸것다 / 林逋遂有西湖樂

하손은 오히려 동각의 시를 지었지 / 何遜還成東閣詩

벼루랑 병풍이랑 〈매화와〉 서로 비추고 / 小硏虛屛供自照

성긴 등잔 비낀 달 모두 매화와 알맞네 / 疏燈斜月摠相宜

고요한 가운데 선천의 괘획을 깨달았더니 / 靜中忽契先天畫

가지 끝 몇 송이 꽃이 벌써 먼저 아누나 / 已被枝頭數葉知

[주D-001]임포(林逋) : 송(宋)의 은사(隱士).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20년 은거했다. 매화와 학을 몹시 사랑하였다.

[주D-002]하손(何遜) : 남조(南朝)양(梁)의 시인. 그의 설중 매화(雪中梅花)를 읊은, 동각(東閣)시가 유명하다.

[주D-003]선천(先天)의 괘획(卦畫) : 송 나라 소강절(邵康節)이 주역(周易)의 괘도(卦圖)를 해설하고 선천도(先天圖)와 후천도(後天圖)를 구분하여,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는 선천(先天)이요, 주문왕(周文王)의 팔괘는 후천(後天)이라.” 하였다.

[주D-004]형제 : 매화(梅花)를 매형(梅兄)이라 한다.

 

 

 

삼월 회일 즉사(三月晦日卽事)

설손(偰遜)

보리는 푸릇푸릇 밀은 자라 가지런 / 大麥青青小麥齊

버들꽃 눈과 같고 살구꽃은 드무네 / 柳花如雪杏花稀

바람결에 새 한 마리 사람을 부딪고 지나고 / 風前一鳥打人過

하늘 가의 외 구름은 기러기를 배워 나는구나 / 天際孤雲學雁飛

날씨가 하 좋으니 금방 취해 볼거나 / 轉愛晴光卽欲醉

봄이 문득 가버릴까 두렵네 / 却愁春事便相違

비단안장 옥굴레가 길에 가득한데 / 錦韉玉勒紛紛滿

석양에 혼자 읊으며 돌아감이 쓸쓸하구나 / 日暮遙怜獨詠歸

용장사(龍藏寺) 독묘루(獨妙樓)

고돈겸(高惇謙)

한 떨기 옥인 양 절승한 봉우리에 / 絶勝峯巒玉一叢

새로 지은 조그만 누각이 반공에 솟았네 / 新開小閣壓靑空

맑고 빈 골짝에 우뚝한 가운데 / 憑凌洞壑淸虛裏

아득히 안개와 놀을 띠었구나 / 映帶煙霞縹緲中

눈 온 뒤에 오르는 손은 은세계에 노니는 듯 / 雪後客登銀色界

달 밝은 밤에 사람들은 수정궁에 누워 있네 / 月明人臥水精宮

저 스님 무심히 앉아 있는 곳 / 吾師宴坐無心處

난간 밖 바람소리가 솨솨 하누나 / 檻外嘐嘐萬竅風

 

 

 

서강(西江)에 진수(鎭守)하면서[鎭守西江作]

정사도(鄭思道)

오뚝히 앉은 장군의 새하얀 머리 / 將軍兀坐鬢如絲

풍운은 강까지 휘몰아치고 밤은 오경 / 風雪連江五夜遲

하늘이 가까워 난새ㆍ봉새 날아 모이고 / 天近鸞鳳正翔集

길이 머니 천리마도 달리기에 지쳤네 / 路長騏驥倦驅馳

영윤이 세 번 쫓겨나도 노염 없기를 감히 바라리 / 敢希令尹三無愠

진평이 여섯 번 낸 기계만 노상 생각하네 / 每憶陳平六出奇

조두소리 뜸한데 잠 못 이루어 / 刀斗聲殘無夢寐

불 켜고 붓을 들어 새론 시를 쓰노라 / 呼燈援筆寫新詩

[주D-001]영윤(令尹)이 …… 노염 없기 : 춘추시대 때 초(楚)의 영윤(令尹) 자문(子文)이 세 번 벼슬에 올랐으나 기뻐하지 않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게 되었어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주D-002]진평(陳平)이 …… 기계(奇計) : 한(漢) 나라 진평(陳平)이 평생에 국가와 전쟁에 대해서 여섯 가지 기특한 꾀를 내었다.

 

 

 

안질(眼疾)

이숭인(李崇仁)

눈이 아스름 흐려져서 고치기 어려우니 / 阿堵昏花未易醫

시 보기 좋아함을 하늘이 꾸중하나뵈 / 彼蒼嗔我好看詩

사람 만나 어찌 완적의 흰 자위를 지으리 / 逢人豈作嗣宗白

물건 볼 때 정말 노자의 이를 이루네 / 視物眞成老子夷

세상에 엎치락 뒤치락 많을 때엔 안 보는 것 더 맛이 있고 / 飜覆多時尤有味

곱다 못생겼다 떠드는 것을 내야 통 몰라라 / 姸媸擾處竟無知

문 닫고 방석 위에 흙덩인 양 앉았노니 / 閉門塊坐蒲團上

아이들 큰 바보라고 웃어대리라 / 遮莫兒曹笑大癡

[주D-001]완적(阮籍)의 흰 자위 : 완적(阮籍 자(嗣宗))이 눈을 흰자위, 푸른 자위로 지을 줄을 알아 맘에 맞는 사람은 푸른 눈[靑眼]으로 대하고 속인이 오면 흰 눈으로 대하였다.

[주D-002]노자(老子)의 이(夷) : 노자에, “보아도 안 보임을 이(夷)라 이름한다.[視之不見 名曰夷]”는 말이 있다.

 

 

 

呈訥村先生內相宗盟

李崇仁

星巒一朶聳層巓。岱色葱蘢照九筵。道味耶城老居士。風流香案舊儒仙。秋晴共蠟遊山屐。夜靜還謌問月篇。應笑鄕生猶落魄。半簪衰髮雪飄然。

 

 

 

추회(秋回)

이숭인(李崇仁)

하늘 끝에 가을이 와도 아직 못 돌아가니 / 天末秋回尙未歸

외로운 성 해질녘에 슬픔을 못 이기네 / 孤城落照不勝悲

일찍이 조정에 나가 사신으로 참예했더니 / 曾陪鴛鷺趨文陛

지금은 강호에 와서 낚시줄을 다스리네 / 今向江湖理釣絲

참소에 걸린 뒤로 뼈는 몹시 여위었으나 / 骨自罹讒成大瘦

멋대로 막 지으니 시는 되려 신기해라 / 詩因放意有新奇

구슬과 율무 씨는 마침내 가려질거나 / 明珠薏苡終須辨

걱정은 그저 장자아 다루기 어려운 것 / 只恐難調長者兒

[주D-001]구슬과 율무[薏苡] 씨는 …… 가려[辨]질거나 : 한(漢)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 있을 때 항상 율무 씨를 먹다가[먹으면 몸을 가볍게 하고 욕심이 적어지고 또 장기(瘴氣)를 이긴다 한다.] 환군(還軍)할 때 한 수레에 싣고 왔었다. 그가 죽은 뒤에 그를 참소하여 상소한 자가 말하기를, “그가 전에 싣고 돌아온 것이 모두 구슬과 물소뿔[文犀]이라.” 했다. 뇌물을 받지 않고 억울하게 비방을 입는다는 말.

[주D-002]걱정은 그저 …… 어려운 것 : 마원이 말하기를, “내가 임금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므로 국사에 죽는 몸이 되지 못할까 염려하였더니 이제는 소원대로 되게 되었다. 다만 장자가(長者家) 아이들이 혹 좌우에 있거나 혹 종사(從事)가 되었을 때에 그것을 다루기 어렵다.”하였다. 장자아(長者兒)는 권세 있는 집 자제를 가리킨 것이다.

 

 

 

謁箕子祠

李崇仁

臺山山下碧松陰。箕子祠堂靜且深。洪範九疇敷帝訓。遺風萬古感民心。鬼神阿衛森如在。蕉荔芬芳尙必歆。多少華人頻動問。愀然東望每謳吟。

 

 

 

설날 봉천전(奉天殿)에 일찍 조회하며[元日奉天殿早朝]

이숭인(李崇仁)

촛불이 휘황하게 붉은 담을 비추는데 / 煌煌蠟燭照彤墻

궁중의 누수 소리 새벽빛을 재촉하네 / 宮漏聲催動曙光

채장이 뜰 아래 위에 나뉘어 늘어서고 / 彩仗分開庭上下

용포는 대궐 한가운데 드높이 앉으셨네 / 赭袍高拱殿中央

멀리 바쳐온 옥백은 남만북적 통하였고 / 梯航玉帛通蠻貊

예악이며 의관은 한당 보다도 뛰어나네 / 禮樂衣冠邁漢唐

조회 뒤에 다시 잔치를 내리시오니 / 朝罷更叨霑錫宴

동풍이 분지술잔에 따스하게 불어오네 / 東風吹暖泛椒觴

[주D-001]분지술잔[椒觴] : 설날에 임금과 어버이께 세배 드릴 때 분지술[椒酒]을 나눈다. 분지는 옥형성(玉衡星)의 정(精)이므로 몸을 가볍게 하고 늙음을 안 탄다고 한다.

차운하여 일본 무상인의 시권에 제하다[次韻題日本茂上人詩卷]

경오년(1390)에 공이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개성에 살던 때임.

【안】 이때에 일본 중 영무(永茂)가 와서 석방사(石房寺)에 머물렀음.

한 이파리 조각배로 만리를 떠나와서 / 一葉扁舟萬里行

개성이라 석방사에 이 년을 머물렀네 / 石房二載住開城

사람이 와 법 물으면 눈을 치떠 만나보고 / 人來問法揚眉見

손이 문을 두들기면 합장하고 맞아주네 / 客至敲門合掌迎

생각이 일어나도 심원은 고요하고 / 念起心源還自寂

도 높으니 골격은 무한히 청수하네 / 道高骨格不勝淸

오대산 어디메로 스승을 찾아가서 / 五臺何處尋師去

한밤중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을 건고 / 認聽鐘聲半夜鳴

【안】 영무(永茂)가 오대산을 구경하려고 해서였음.

 

 

 

초사(草舍)

【안】 초사(草舍)는 회진(會津)소재동(消災洞)에 있음.

이엉 끝을 아니 잘라 집처마는 너절한데 / 茅茨不剪亂交加

흙을 쌓아 뜰 만드니 형세는 비틀배틀 / 築土爲階面勢斜

깃든 새는 슬기로워 저 자는 곳 찾아오고 / 棲鳥聖知來宿處

들사람은 놀래어 뉘 집이냐 물어보네 / 野人驚問是誰家

맑은 시내 아름답게 문을 누벼 지나고 / 淸溪窈窕緣門過

푸른 숲은 영롱하다 문을 향해 가렸구려 / 碧樹玲瓏向戶遮

나가보면 강산은 딴 지역과 같은데 / 出見江山如絶域

문 닫고 들앉으면 옛 생활 그대로세 / 閉門還似舊生涯

 

 

 

만 이밀직 창로(挽李密直彰路)

정도전(鄭道傳)

내 일찍 익재님 문하에서 공부할 때 / 憶曾受業益齋門

홀로 섰던 당시를 역시 들은 바 있었네 / 獨立當時亦有聞

아니나 다를까 적선한 집엔 여경이 있었고 / 積善盡知餘慶在

노성한 이는 갔으나 전형은 남았었네 / 老成雖遠典刑存

금준의 좋은 술은 봄향기 가득했는데 / 金樽美酒春長滿

옥자 널린 바둑판에 해가 또 어두웠네 / 玉子紋楸日又曛

가장 한스럽긴, 선장 이슬 한 잔 가져다가 / 最恨難將仙掌露

따라서 [注]병든 문원 구하지 못한 일이었어라 / 一杯救得病文園

[주C-001]창로(彰路) :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세째 아들.

[주D-001]홀로 …… 있었네 : 공자(孔子)가 홀로 서 있을 때에 그의 아들 이(鯉)가 뜰 앞을 지나니 공자가, “너는 시(詩)를 배우고 예(禮)를 배우라.” 하였다.

[주D-002]노성(老成)한 …… 남았었네 : 한(漢) 나라 공융(孔融)은 채옹(蔡邕)을 좋아하였다. 채옹이 죽은 뒤에 얼굴이 채옹과 비슷한 늙은 병졸(兵卒) 한 사람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시경》에, 노성한 이는 갔으나 전형은 남았구나 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여기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다.

[주D-003]선장(仙掌) 이슬 :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신선 되기를 원하여 구리로 신선의 손바닥을 만들어 세워 감로(甘露)를 받았다.

[주D-004]병든 문원(文園) : 한(漢) 나라 문인(文人)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킴. 효문원령(孝文園令)을 지냈는데, 그는 소갈(消渴)병이 있었다.

 

 

 

원성에서 김약재와 함께 안렴사 하공 윤 ㆍ목사 설공 장수 을 보고 짓다 정사 [原城同金若齋見按廉使河公 崙 牧使偰公 長壽 賦之 丁巳 ]

【안】 원성(原城)은 지금의 원주임.

이별한 지 삼 년이라 이제 만나니 / 別離三載始相逢

지난 일 유유하다 꿈속과 같네 / 往事悠悠似夢中

훼예 시비 쌓인 속에 몸은 아직 살아 있고 / 毁譽是非身尙在

비환 출처 다르건만 도는 도로 같다네 / 悲歡出處道還同

【안】 공이 이때 원성(原城)회진(會津) 적소에서 돌아왔음. 후인의 평에 ‘이 두 글귀는 사의(詞意)가 융혼(融渾)하여 씹을수록 남은 맛이 있음과 동시에 옛 소인(騷人)들이 천적(遷謫) 중에 쓴 산고(酸苦)한 상언(常言)을 씻어 버렸다.’ 하였음.

풍진이 쉬질 않아 서생은 병들었고 / 風塵未息書生病

세월이 물 흐르듯 지사는 궁할 밖에 / 歲月如流志士窮

어찌 차마 술상머리 이 가락을 노래하리 / 忍向尊前歌此曲

내일 아침 서로 갈려 서로 또 동으로 / 明朝分手又西東

[주C-001]정사 : 고려(高麗) 우왕 3년(1377).

 

 

 

봄날 형과 아우에게 부침[春日寄昆季]

강회백(姜淮伯)

여관 처마끝 빗소리 차마 어이 들으랴 / 旅牕簷雨苦難聽

때때옷 입고 부모님 앞에 춤 못 추는 서글픔 / 況復萊衣隔鯉庭

마음은 저녁 구름 함께 그저 돌아갈 생각 뿐 / 心與暮雲歸不駐

시름은 봄 술 따라 취해 깬 때 없구나 / 愁隨春酒醉無醒

강산에 오늘 내 머리 먼저 희었네 / 江山此日頭先白

골육들은 언제 눈이 다시 푸르리 / 骨肉何時眼更靑

벼슬길이 험한 줄 익히 겪어 아는 일 / 宦路險夷曾歷試

이 몸은 천지간의 한낱 부평초로구나 / 是身天地一浮萍

 

 

 

제 남곡선생 시권(題南谷先生詩卷)

성석린(成石璘)

나라 위한 높은 뜻이 북두 남쪽에 비치건만 / 許國孤標映斗南

돌아와 골짜기에 세 길을 열었구나 / 歸來谷口逕開三

만년의 신세는 날기에 지친 새처럼 / 晩年身世鳥飛倦

젊은 시절 공명은 개미 싸움이 부산했네 / 少日功名蟻戰酣

봄바람에 거닐면서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 步屧春風觀物化

달 밝은 밤 풀 깔고 농사얘기 주고 받네 / 班荊月夕聽農談

강호에서나 조정에서나 마음이야 다르리만 / 江湖廊廟心何異

내 집을 사랑하여 조는 맛이 달겠네 / 爲愛吾廬睡味甘

[주D-001]북두(北斗) 남쪽에 비치건만 : 북두성(北斗星)은 하늘의 북쪽에 있으므로 북두의 남쪽이란 천하를 말하는 것이다.

[주D-002]개미 싸움 : 송나라 구양수(歐陽修)가 과거(科擧)의 시관이 되었을 때에 시를 짓기를, “1만 개미 다툴 때에 봄날이 따뜻하다[萬蟻爭時春日暖].”하였다. 여러 선비가 과거보는 것을 개미의 싸움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내 집을 사랑하여 : 도연명(陶淵明)의 〈독산해경(讀山海經)〉에 “뭇 새는 의탁할 곳 있음을 기뻐하거니, 나도 또 내 집을 사랑하노라.”

 

 

 

길재(吉再) 야은(冶隱)에 부쳐 쓰다[寄題吉再冶隱]

성석린(成石璘)

산밑 시냇가의 두어 간 초가집 / 山下數閒溪畔廬

손수 심은 솔과 대의 새파랗게 성긴 가지 / 手栽松竹碧翁疏

마누라는 잔을 씻어 새 술독을 열고 / 細君洗爵開新醞

어린 아들은 등불을 돋우고 옛 글을 읽네 / 稚子挑燈讀古書

세상을 우습게 보는 중산처럼 풀무질이나 하리 / 玩世肯爲中散鍜

빛을 감추니 자릉(후한 엄광의 자)의 낚시질 비슷하구나 / 韜光正似子陵漁

문앞 행길에 수레들 많이 지나건만 / 門前官道多冠蓋

누워서 바라보나니 엎어지거나 말거나 / 高臥從渠自覆車

[주D-001]중산(中散) : 진(晉)의 혜강(嵇康). 그가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 그는 대장장이의 풀무질을 좋아하여 벗 상수(向秀)와 더불어 마주앉아 풀무질을 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여기서는 특히 야은의 야(冶)자를 두고 쓴 말이다.

 

 

 

고성(固城)에서 아우에게 부치며[在固城寄舍弟]

성석린(成石璘)

눈을 들어 보니 강산이 깊고 또 깊은데 / 擧目江山深復深

집의 편지는 한 자가 천 금 값일세 / 家書一字抵千金

밤중에 달을 보면 부모 생각 눈물이요 / 中宵見月思親淚

대낮에 구름 보곤 너를 그리는 내 마음 / 白日看雲憶弟心

두 눈으로 꽃을 보니 봄 안개가 어린 듯 / 兩眼看花春霧隔

비녀꽂은 화사한 머리엔 새벽서리 나리네 / 一簪華髮曉霜侵

봄바람이 어느덧 수심을 스쳐가니 / 春風不覺愁邊過

푸르른 나무 꾀꼬리 울음 문득 숲에 가득했구나 / 綠樹鶯聲忽滿林

 

 

 

차 송당 조정승 운(次松堂趙政丞韻)

권근(權近)

모래 뚝이 예와 같이 문앞에 비꼈는데 / 沙堤依舊倚門鈄

삼한의 교목(대를 이어 벼슬한 집안)으로 적선해온 가문 / 喬木三韓積善家

길 가다 소를 물으니 나라 근심 간절하고 / 道上問牛憂國切

조정에 독수리를 천거하여 어진 이를 많이 나게 했네 / 朝中薦鶚進賢多

훈신으로 철권이 두 축을 이었고 / 勳臣鐵券聯雙軸

재상의 백마서(관상서)에 오화를 겹쳤네 / 冢相麻書疊五花

노론을 이미 반 부씩 갈랐다 했으니 / 已道魯論分二半

다시 반 부에 일 시작함이 어떠하리 / 更加一半著功何

[주D-001]모래 뚝 : 당나라 때에 정승이 새로 임명되면 그 집 문앞에서부터 모래를 쌓아 새 길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사제(沙堤)라 하였다.

[주D-002]길 가다 소[牛]를 물으니 : 한(漢) 나라 병길(丙吉)이 승상(丞相)이 되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소를 쫓아가는데 소가 헐떡이며 혀를 내뽑는 것을 보고 하인을 시켜, “소를 몇 리나 쫓아왔느냐.” 물어보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그가 말하되, “삼공(三公)은 음양(陰陽)의 조화(調和)함을 맡았으니 지금 보니까 소가 헐떡이니 혹시 음양이 고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물었노라.” 하였다.

[주D-003]조정에 독수리를 천거하여 : 후한(後漢) 공융(孔融)이 명사 미형(彌衡)을 조정에 천거하는 표(表)에 형을 찬양하여, “어느 지조(鷙鳥)가 비록 백이라도 악(鶚)하나만 못하다.” 하였다. 즉 현사(賢士) 인재를 조정에 천거한다는 뜻.

[주D-004]철권(鐵券) : 옛날 공신(功臣)에게 내려주던 쇠로 만든 문권. 붉은 글씨[丹書]로 적었으며, 반쪽을 주고 반쪽을 나라에 보존해 두었다.

[주D-005]오화(五花) : 당나라 때에 여러 재상이 함께 결재할 것에 서명(署名)하는데, 글자의 모양이 꽃처럼 되었으므로 이를 오화판사(五花判事)라 한다.

[주D-006]노론(魯論) : 《논어(論語)》에 노론(魯論)과 제론(齊論)이 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노론(魯論)이다. 송나라 조보(趙普)가 항상 논어를 읽으면서 송 태조(宋太祖)에게 말하기를, “신이 《논어》반부(半部)로서 폐하를 보좌하여 천하를 얻었고, 다시 반부로서 폐하를 보좌하여 천하를 다스리겠습니다.” 하였다.

 

 

 

금강산(金剛山)

권근(權近)

눈같이 우뚝우뚝 선 천만 봉우리 / 雪立亭亭千萬峯

바닷구름 펼치자 드러나는 옥 연꽃 / 海雲開出玉芙蓉

늠실대는 신비한 빛 창해를 닮은 듯 / 神光蕩漾滄溟近

굼틀대는 아늑한 기운 조화를 모은 듯 / 淑氣蜿蜒造化鍾

오뚝 솟은 산부리는 조도를 굽어보고 / 突兀岡巒臨鳥道

맑고 깊숙한 골안에는 신선의 자취 감추었네 / 淸幽洞壑秘仙蹤

동국에 노는 분들 모두 절정에 올라서 / 東遊便欲凌高頂

우주를 내려다보며 가슴 한 번 씻으려네 / 俯視鴻濛一盪胸

 

 

 

진포(鎭浦)에서 왜선을 깨뜨린 최 원수(崔元帥) 무선(茂宣) 를 축하하다. 원래2수 기1

權近

공이 처음으로 화포(火砲)를 만들었다.

때 맞추어 태어난 우리님의 지략이라 / 明公才略應時生

삼십 년 왜적 난리 하루에 평정했네 / 三十年倭一日平

바람 실은 전함(戰艦)은 나는 새가 못따르고 / 水艦信風過鳥翼

진(陣) 무찌른 화차는 뇌성이 무색하네 / 火車催陣震雷聲

가소롭다 주유(周瑜)는 갈대에 불지를 뿐 / 周郞可笑徒焚葦

자랑 마소 한신이 목앵부 타고 건넌 것을 / 韓信寧誇暫渡甖

이제부터 큰 공이 만세를 전하고 말고 / 豐烈自今傳萬世

능연각에 초상 걸려 여러 공경(公卿) 으뜸이리 / 凌煙圖畫冠諸卿

[주D-001]주유(周瑜)는……불지를 뿐 : 삼국시대(三國時代) 오(吳) 나라 장수 주유가 조조(曹操)와 싸울 적에, 전함(戰艦) 수십 척에다 섶을 가득 싣고 기름을 그 속에 간직한 다음, 조조에게 거짓 항복하겠다고 속이고는 조조의 진영(陣營)에 다가가서 그 섶을 실은 배에다 불을 지르자, 불길이 강풍(强風)을 타고 만연(蔓延)하여 조조의 군마(軍馬)가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죽은 자가 매우 많아, 조조를 대패시킨 일을 말한다. 《三國志 卷54 周瑜傳》

[주D-002]한신(韓信)이……건넌 것 : 한 고조(漢高祖) 때, 위왕(魏王)이 배반하자 한신이 위 나라를 치기 위해 임진(臨晉)을 건널 적에 목앵부(木罌缻 나무로 만든 통 여러 개를 얽어 쭉 한 줄로 띄우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물을 건너는 장치)에다 군사들을 태워 인솔하고 건너가서 위왕 표(豹)를 사로잡고 위 나라를 평정했던 일을 말한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03]능연각(凌煙閣)에 초상 걸려 : 능연각은 당(唐) 나라 때 서안부(西安府)의 성 안에 있던 전각(殿閣) 이름인데, 당 태종(唐太宗)이 여기에다 장손무기(長孫無忌)ㆍ두여회(杜如晦) ㆍ위징(魏徵)ㆍ방현령(房玄齡) 등 24명의 훈신(勳臣)들의 초상을 그려서 걸어 놓게 했던 고사이다. 《唐書 太宗紀》

 

 

 

한식(寒食)

이첨(李詹)

금년 한식을 서울서 묵느라니 / 今年寒食滯京華

철이 쉽게 갈수록 집 생각이 간절하이 / 節序如流苦憶家

버들은 시름 옆에서 가지를 하늘거리고 / 楊柳愁邊初弄線

다미는 비 온 뒤에 꽃이 피려는구나 / 茶蘼雨後欲生花

봄을 찾아 동산엔 말 탄 이들 오가고 / 尋春院落多遊騎

성묘 가는 들판엔 떼 가마귀 모였네 / 上墓郊原集亂鴉

물색은 새롭건만 몸은 차차 늙어가니 / 物色漸新人漸老

어드메 신선따라 단사를 만들꼬 / 慕眞何處鍊丹砂

 

 

 

금주(錦州)로 부임하는 김시승(金寺丞)을 보내며[次金寺丞赴錦州韻]

강호문(康好文)

금계의 풍물이 주진촌과 비슷 / 錦溪形勝似朱陳

궁벽진 깊숙한 곳에 풍속도 순박하네 / 地僻天深俗亦醇

10리의 현가소리는 무성의 원님 / 十里絃歌武城宰

한 갈피 굴뚝 연기는 태고 적 백성들 / 一區煙火葛天民

곳곳마다 푸른 이끼 지나는 이가 적고 / 蒼苔到處經過少

붉은 살구꽃 필 무렵 농사 권장 자주 하네 / 紅杏開時勸課頻

요행 내 가난한 집이 추읍에 있으니 / 幸有貧居在楸邑

그대 정사보러 남으로 놀러 갈 때 봄 안 어기리 / 南遊觀政不違春

[주D-001]주진촌(朱陳村) : 당(唐) 나라 백락천(白樂天)의 주진촌(朱陳村)에 대한 시(詩)가 있는데, 그 마을에는 주(朱)ㆍ진(陳) 두 성이 살며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깊숙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주D-002]10리의 …… 원님 :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 원[宰]이 되었는데 공자가 무성에 가서 현가(絃歌) 소리를 듣고 기뻐하였다.

 

 

 

卜居 008_512a

朴宜中

幽居氣味少人知。獨愛吾廬護弊籬。朝望海雲開戶早。夜憐山月下簾遲。興來邀客嘗新釀。吟就呼兒改舊詩。因病抱關身已老。愧無功業補明 一本作淸 時。

 

 

 

즉사(卽事)

유방선(柳方善)

첩첩 산중 솔나무, 참나무 사이 한 초가 / 四山松櫟一茅廬

담 등지고 해바라기, 졸음 솔솔 오누나 / 坐負墻暄睡味餘

옷 꿰맨 데선 노 왕맹처럼 이를 잡고 / 衣縫每捫王猛蝨

낚싯대론 부질없이 강태공처럼 고기 낚기 / 漁竿空釣呂望魚

높은 벼슬은 하마 얻을 마음 없으니 / 軒裳已是無心得

금과 옥을 욕심 부려 저축해서 무엇하리 / 金玉何須滿意儲

토란이랑 밤이랑 날 보내기 넉넉하니 / 芋栗自堪謀送日

반찬에 하필 게장을 먹어 무삼하리 / 盤飱不必蟹爲胥

 

 

 

신도(新都) 눈 오는 밤에 구양수(歐陽修)의 체를 본떠서[新都雪夜效歐陽體]

정이오(鄭以吾)

훈훈한 수병풍 안에 술이 갓 거나한데 / 繡屛圍暖酒初酣

뜰에는 나도 몰래 눈이 대단한 모양 / 不覺庭除勢已嚴

고요한 밤 땅을 쓸 바람도 없고 / 夜靜更無風掃地

창문이 훤하니 달이 처마를 엿보는 듯 / 窓明疑有月窺簷

만 채 초가 지붕에 한결같이 덮였고 / 茅茨萬屋平初合

외로운 배의 도롱이 삿갓은 무거움을 더했으리 / 蓑笠孤舟重乍添

새벽에 남산 바라보면 모두 한 빛 / 曉望終南渾一色

아마도 마이산(중국에 있는 산 이름. 말귀처럼 두 봉우리가 쫑긋하다.) 두 말귀 끝만 뾰죽 드러 났으리 / 應餘馬耳出雙尖

[주C-001]구양수(歐陽修)의 체 : 구양수(歐陽修)가 여러 사람과 함께 눈[雪]을 두고 시를 지으면서 옥(玉)ㆍ는(銀)ㆍ경(瓊)ㆍ가(梨) 등 눈에 대하여 늘 쓰이는 여러 글자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어옹(漁翁)

설장수(偰長壽)

뜬 이름에 매어 구질구질 바쁘지 않고 / 不爲浮名役役忙

생애를 찾아 물 구름 고장에 오락가락 / 生涯追逐水雲鄕

따뜻한 봄 질펀한 호수에 안개가 천 리 / 平湖春暧煙千里

가을 경치 한창인데 달 아래 외로운 배 / 古岸秋高月一航

자맥ㆍ홍진에는 꿈조차 없고 / 紫陌紅塵無夢寐

푸른 도롱이 부들삿갓으로 평생을 짝하누나 / 綠蓑靑蒻共行藏

어여차 한 마디 노래 속의 그 멋이 / 一聲款乃歌中趣

인간의 높은 벼슬을 부러워나 할소냐 / 那羨人閒有玉堂

 

 

 

산에 올라 혜상인(惠上人)의 원(院)에 쓰다[登山題惠上人院]

변계량(卞季良)

까마득히 반쯤 산길이 구름에 들었으니 / 山徑迢迢半入雲

이번 놀이는 시끄런 티끌 세상 피할 만하네 / 玆遊足可避塵喧

백 년 신세는 나그네가 길을 헤매는 것 / 百年身世客迷路

골 가득한 연하 속에 중은 문을 닫았구나 / 滿壑煙霞僧閉門

시냇가에서 촌 늙은이와 나뭇단을 묶기도 하고 / 晴澗束薪隨野老

숲에서 잔나비와 함께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 秋林摘實共寒猿

선방에 들어가 능가자(불경 이름)를 물으려 하니 / 我來欲問楞伽字

스님은 눈 감고 머리 숙여 한 말씀도 없구나 / 合眼低頭無一言